포스코 자회사 설립 본격화에 협력사들 "회사 존폐 위기감"

입력 2023-04-03 15:50:59

협력사와 거래하는 하청업체들도 일감 감소 전망에 한숨
포항상의 "성급한 자회사 설립, 숙의 필요" 요청에, 포스코 측 "피해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

포스코가 지난해 발생한 수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설비관리 역량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정비전문 자회사 설립에 돌입했다. 사진은 포항제철소 2열연공장에서 침수피해 복구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포스코 제공
포스코가 지난해 발생한 수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설비관리 역량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정비전문 자회사 설립에 돌입했다. 사진은 포항제철소 2열연공장에서 침수피해 복구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포스코 제공

포스코가 최근 제철소 설비 정비 전문 자회사 설립(매일신문 3월 20일 보도)에 속도를 내면서 협력사들이 존폐 우려감에 휩싸였다. 하청 기업들의 일감 감소 등 지역 경제에도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지난달 포스코의 이같은 방침이 협력사 직원에 대한 직고용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며 정비 자회사 설립 추진에 반대의사를 밝혔다.

3일 포스코와 협력사 등에 따르면 포항제철소가 정상조업을 시작한 1973년 만들어진 협력사(당시 외주파트너사)는 60여 개에서 최근 45개로 줄었다. 그나마도 이번 제철공정 단위별 (설비·기계·전기) 정비 자회사가 설립되면 순차적으로 정리된다.

자회사는 6월 출범 예정이고 이달부터 직원 채용에 들어간다. 우선은 포항제철소 설비정비 분야 협력사 13개사를 대상으로 시작하지만 앞으로는 다른 분야에도 확산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자회사 직원은 공개채용 절차를 통해 모집하되, 현재 일하는 협력사 직원부터 우선 채용한다.

협력사들의 자회사 참여 방식은 자산양수·양도이며, 자산은 외부기관에서 평가한다.

이런 구체적 계획이 나오면서 개인이 설립해 수십 년간 포스코 협력사 일을 한 오너기업들은 영업권 보상을 두고 포스코와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포스코가 지분과 설비만 보상해 주기 때문이다. 버틴다고 해도 자회사로 떠나는 직원들을 잡을 방법이 없어 문을 닫든지, 회사를 통째로 넘겨야 할 판이다.

협력사와 거래하던 하청사들도 걱정이 만만찮다. 전문기술을 보유한 직원들이 자회사로 이동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다만, 협력사 횡포를 근절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하청업체 한 관계자는 "안전관리 비용을 이유로 공사비를 적게 준 뒤 하청사에게 안전관리요원을 따로 선발하라고 지시하는 등 협력사가 하청업체에 이중부담을 지게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발 빠른 일부 협력사 간부들이 자회사의 하청사로 새롭게 일하기 위한 창업준비를 진행하면서 기존 하청사들 사이에서 일감 감소를 걱정한다.

지역경제에도 여파가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협력사에 작업복이나 안전화, 사무용품 등을 납품하는 업체 경우 거래가 끊길 위기에 놓였다. 이들 업체는 자회사 납품은 사업규모 상 포스코의 구매시스템을 따라가기 어렵다.

특히 포스코는 소모성 자재 구입을 계열사인 엔투비를 통하고 있어 경쟁도 불가능하다. 협력사별로 20~40개 납품업체가 있다.

은행과 세무 등 협력사와 거래하는 관계인들도 불안하다. 45개 협력사에서 나오던 매출이 사라지면 포항의 경제 규모에서 이를 메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부터 협력사 대표 간 또는 포항상공회의소 주최로 관련 회의를 열고 있지만 포스코의 입만 바라볼 뿐 뾰족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포항상의는 "정비 자회사 설립이 너무 급하게 추진되고 있다. 또 이로 인한 지역 경제 피해가 불을 보듯 뻔하다"며 포스코 측에 협력사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에 포스코 측은 "지난달 20일 이사회 승인이 나기 전까지 자회사 설립을 말하기 어려웠고 승인 후 내용을 전달했다.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있기에 '뒷문을 모두 열고' 대응할 생각이다. 소통의 기회를 더 마련해 충분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