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 계명대 교수
좀 과장해서 말하면 소설의 삼분의 일은 레시피다. 월별로 구성된 열두 개의 장은 요리명이고 그 밑에는 요리 재료와 조리법이 상술되어 있다. 티타라는 여성이 이 요리의 주체이자 서사의 주인공이다.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나오자마자(1989)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요리소설이다. 한국에서는 보기드믄 멕시코 문학으로서 음식에 대한 미학적 상상력을 '막장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티타는 기이한 가풍을 이어오는 집안의 막내다. 기이한 가풍이라 함은 막내딸은 결혼을 하지 않고 어머니를 돌보아야 한다는 가규(家規)를 말한다. 티타는 어머니의 젖이 말라버려 부엌에서 요리사의 젖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그런지 일찍부터 요리에 비상한 재능을 발휘한다. 심성이 고운 티타는 자신의 운명을 감내하며 요리에서 삶의 낙을 얻는다.
그러나 16살이 되던 해에 그 운명을 시험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페드로라는 청년을 만나 대책 없는 사랑에 빠진 것이다. 페드로가 어머니에게 청혼을 해보지만 즉각 거절당한다. 대신 큰 언니(로사우라)와 결혼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한다. 페드로는 순전히 티타의 주변에라도 있겠다는 일념으로 사랑 없는 결혼을 한다. 이 웃지 못 할 아이러니에 티타의 가슴은 널을 뛰고 요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언니의 결혼식 케이크를 만들면서 흘린 눈물이 반죽에 들어가 그것을 먹은 하객들이 모두 구토를 해대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그런가 하면 페드로에게 받은 장미를 넣어 만든 요리는 식구들에게 견딜 수 없는 성욕을 발동시킨다. 둘째 언니(헤르투르디스)는 뜨거운 몸을 견디지 못해 벌거벗고 들판을 뛰어다니다가 한 장교(후안)를 만나 말 위에서 섹스를 한다. 뒤에 두 사람은 부부가 되고 헤르투르디스는 혁명군 장군이 된다.
티타는 사랑하는 사람을 형부로 두고 '넘치기 직전의 초콜릿 반죽'(원제 Como agua para chocolate의 뜻) 같은 상태로 이십 수년의 세월을 보낸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은 어머니와 언니가 세상을 떠난 뒤다. 티타와 페드로는 칠레 고추요리를 먹고 부엌 옆에 있는 밀실에서 사랑을 나눈다. 은빛 양초 250개가 두 사람의 낭만을 고조시킨다. 페드로는 절정에서 숨을 거두고 티타는 방에 불을 질러 페드로를 따라간다. 순간을 영속화 하겠다는 비장한 퍼포먼스다. 그렇게 티타는 "광채에 휩싸여 영원의 터널을 통과한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남미 전통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포스트모던한 소설이다. 요리로 범속한 일상에 마술을 걸어 구차한 현실을 잊게 한다. 특히 미각의 에로스를 극대화하며 관습과 도덕을 넘어선다. 먹는 것은 생존의 조건만은 아니다. 심지어 인식에로의 길을 열기도 한다. 일찍이 이브와 아담이 체험했던 일이다. 이들은 사과를 따먹고 선과 악을 분별하기 시작했다.
미각은 인간의 미적 영토를 풍요롭게 한다. 우리말은 맛과 미의 친연성을 어감에서부터 보여준다. 우리는 맛이 멋을 경유하여 미로 확장되는 현상을 일상에서 경험한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일상의 미학을 탁월하게 구현한 작품이다. 여기에 여성 특유의 미감이 빛을 발하는바 처음부터 예견된 여류작가의 전략이다.
이경규 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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