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 AI(인공지능) 재판

입력 2023-03-22 09:19:20 수정 2023-03-22 17:09:13

오정일 경북대 행정대학원장(한국정부학회장)

오정일 경북대 행정대학원장
오정일 경북대 행정대학원장

지난 2월 유독 이상한 판결이 많았다.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람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법원은 '시세 조종(操縱)'이 수천 건에 이르는 등 죄가 가볍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이익을 얻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실패한 주가 조종은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일반 사원이 6년 일하고 50억 원을 받았다. 검찰은 50억 원을 뇌물로 보았다. 법원은 50억 원이 많다고 하면서도 뇌물로 인정하지 않았다. 아들과 아버지가 따로 살아서 '경제적 공동체'가 아니라고 했다. 따로 사는 가족은 남이라는 논리이다. 동성(同性) 결혼의 상대방은 건강보험 피부양자라는 판결도 나왔다. 우리나라 헌법, 민법, 대법원, 헌법재판소는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다. 담당 판사는 '동성 결합'이 혼인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비슷하면 같게 취급한다는 논리이다.

'검정 고무신'을 그린 작가가 목숨을 끊었다. 이 작가는 출판사와 소송 중이었다. 소송은 3년 이상 계속됐는데, 아직 1심이 끝나지 않았다. 준비기일이 2년 넘게 걸렸고 본 재판은 작년에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 2월 재판부가 바뀌었다. 재판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이 작가가 목숨을 끊은 이유가 재판 지연일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재판 지연은 대한변호사협회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변호사의 90%가 재판 지연을 경험했고, 25%는 소송 시작 후 본 재판에서 판사를 만나기까지 6개월이 걸린다고 답했다.

판사는 헌법으로 신분이 보장된다. 금고(禁錮) 이상의 형(刑)에 의하지 않고는 파면되지 않는다. 왜 판사 신분을 보장해야 하는가? 사법제도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객관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판사가 그 역할을 한다. 객관성을 유지하려면 판사의 개인적 이익이 재판 결과와 무관해야 한다. 판사는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여야 한다. 그러나 '이해관계 없음'은 게으름을 유발한다. 그것이 인간 본성이다.

AI(인공지능)를 재판에 도입하면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이 가능하다. AI는 기계적이다. 그래서 공정하다. AI는 성실하다. 24시간 쉬지 않고 일한다. AI가 판결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기우(杞憂)이다. 2019년 '알파로' 경진대회가 열렸다. 연봉 2천만 원을 받는 19세 남자가 9년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문제로 주어졌다. '변호사+AI'가 1위와 2위를, '일반인+AI'가 3위를 차지했다. 변호사 2명으로 구성된 9개 팀은 4~12위에 그쳤다. 점수도 충격적이다. 1위 120점, 3위 107점, 4위 61점이었다. AI를 사용한 변호사와 일반인의 차이는 13점에 불과했다. AI를 사용한 일반인은 변호사 2명보다 46점이 높았다. 모 백화점이 마케팅 문구(文句) 작성용 AI를 개발했다. 사람처럼 문맥을 이해하고 창의적인 문장을 쓴다고 한다. AI는 판결문도 잘 쓸 것이다.

AI를 재판에 도입하면 판사는 할 일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 재판은 불확실하다. 무엇이 진실인지 확실하면 재판이 필요 없다. AI는 원고와 피고의 주장 중 무엇이 진실일 확률이 높은지 계산한다. AI가 유죄 확률을 60%로 계산하더라도 "피고의 유죄 확률이 60%이다"라고 판결할 수 없다. 판결은 유죄와 무죄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숫자로 표시된 확률을 양분적(兩分的) 결정으로 바꿔야 한다. 이것을 판사가 해야 한다. 특히 유죄 확률이 50%에 가까울 때는 판사 재량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판결을 내려야 사건이 끝난다.

7년 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겼다. 그 전까지 프로기사는 사범(師範)으로 불렸다. 프로기사 9단은 바둑의 신(神)이었다. 이세돌 9단의 패배로 권위가 무너졌다. 프로기사는 신이 아니었다. 한 수를 둘 때마다 AI가 승률을 계산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프로기사들이 둔 많은 수는 최선이 아니었다. 프로기사는 신이 아니지만, 여전히 그들은 전문가이다. 이제 프로기사들은 AI의 수를 연구해서 사람들에게 설명한다. 프로기사들의 도움으로 사람들은 AI의 수를 이해하게 되었다. 프로기사와 AI는 공생(共生)하고 있다. 법원이 참고하기를 바란다. 판사는 신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