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계 최대 규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경기 용인 일대에 둔다는 계획을 발표한 뒤 지역민들이 극도의 상실감에 빠져들고 있다. 역대 정부가 30년 세월 동안 지켜온 국가 운영 대원칙인 수도권 공장 총량 규제가 사실상 붕괴됐으며 이로 인해 윤석열 정부가 간판으로 내세웠던 국가균형발전 정책이 뿌리째 흔들리는 모습까지 드러낸 것이다.
정부가 300조 원 규모 투자를 유치해 조성할 신규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첨단 반도체 제조공장 5곳을 비롯해 국내외 소재·부품·장비 및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 150곳이 유치될 계획이어서 반도체 수도권 싹쓸이론이 제기되고 있다. 경북도·구미시가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구미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 노력에도 당연히 빨간불이 들어왔고,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수도권 블랙홀에 대한 공포가 또다시 엄습하고 있다. 2차전지 특화단지 유치를 염원하는 포항으로까지 불안감이 번지는 중이다.
수도권 규제가 풀리면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 협력업체들도 대기업을 따라가고 이는 지역 산업 생태계의 붕괴로 직결된다. 지역 산업이 무너지면 인력을 공급하는 대학도 고사 위기에 내몰린다. 수도권 집중은 수도권의 난개발을 불러오고 이로 인해 수도권 주민들 삶의 질도 악화된다. 이 엄청난 국가적 폐해를 막아보자는 최소한의 조치가 수도권 규제인데 윤석열 정부는 이 정책의 정확한 함의를 놓치고 있다.
지방에 대한 수도권의 절대 우위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수도권 규제 완화에는 신중이라는 단어를 전치시켜야 한다. 이 연장선에서 내발적 역량이 부족한 지방에 대해 다소 파격적인 시혜 정책이 요구돼 왔고 실제로 집행돼 왔다. 그런데 이 정부는 역대 정부가 지켜온 원칙과 엇박자를 냈다. 윤석열 정부는 절제와 균형을 잊어버린 채 '하면 된다'식 밀어붙이기 국정을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고 이로 인해 큰 위기를 부를 수 있다는 경각심까지 가져야 한다. 반도체 및 2차전지 특화단지 지정 등 대구경북의 미래가 걸린 국책사업에서는 균형감 있는 국정 운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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