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미 디자이너의 세계 명품 이야기] 166년 역사 영국 명품의 자존심 ‘버버리’

입력 2023-03-20 14:17:06 수정 2023-03-20 18:33:42

비바람 막던 고무 소재 레인코트, 왕실·군대 거치며 패션업계 점령
중세 기마상 형상 '트레이드마크'…캐미시머 스카프 대표 액서서리
어깨선 강조 트랜치코트 고급화

버버리 2022 가을/겨울 패션쇼.버버리 홈페이지
버버리 2022 가을/겨울 패션쇼.버버리 홈페이지

봄가을에 입는 긴 겉옷인 트렌치코트. 톡톡한 원단에 허리를 끈으로 묶는 디자인으로 분위기까지 내는 옷을 흔히 '버버리'로 통칭된다. 독특한 디자인이다 보니 브랜드가 제품을 대표하게 된 셈이다.
버버리는 영국의 자존심이자 특유의 체크무늬를 상징한다. '버버리 체크'라는 말과 "영국이 낳은 건 의회 민주주의와 위스키, 비틀즈, 그리고 버버리 코트다"라는 우스개소리도 있다. 버버리에 대한 영국인들의 애정도 그만큼 각별하다.

토마스 버버리
토마스 버버리

◆ 독창적 소재 개발로 시작된 버버리의 원동력

1856년 21세의 토마스 버버리(Thomas Burberry)는 영국 햄프셔 지방의 베이싱스토크에서 작은 포목상을 운영하였다. 영국의 변덕스런 날씨로 비가 자주 오는 날이 많아 사람들은 우산을 들고 다니며 활동성이 떨어지는 고무소재로 제작된 무거운 레인코트가 필수 아이템이었다.

토마스 버버리는 우연히 농부나 양치기가 궂은 날씨에 젖거나 더러워지지 않게 걸치는 작업복인 스목 프록(목면과 린넨 등으로 제작된 셔츠형의 작업복)에서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면과 마 소재의 특성이 통기성과 방수성이 뛰어나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는 것을 알고 이집트산 면을 촘촘하게 직조하여 방수 가공한 소재를 개발하여 개버딘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1888년 개버딘으로 특허를 받았다. 개버딘(순모 ·순면 등 여러 섬유를 사용하여 능직으로 조밀하게 짠 옷감)이라는 혁신적인 원단개발에 성공하여 기능성 의복과 제품 제작하여 큰 인기를 모았다.

1911년 최초로 남극 탐험에 성공한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 선장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버버리 개버딘 소재의 장비와 방한복이 혹한 추위와 바람에 자신을 보호했다고 말했으며 1914년 영국인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 경도 세 번의 남극 탐험에서 버버리 개버딘 제품을 입었다.

또한 1919년 최초의 대서양 횡단에 성공한 알콕 경 역시 버버리를 입고 비행에 성공했다. 방수가 잘되고 바람에 강한 개버딘의 특성 때문에 탐험가, 비행사, 열기구 여행가 등 버버리의 개버딘으로 만든 의복과 장비를 즐겨 사용했으며 개버딘 원단은 텐트 소재로도 인기가 많았다.

영국 왕실의 정규 복장으로 지정된 버버리
영국 왕실의 정규 복장으로 지정된 버버리

◆ 군용 방수복에서 시작된 트렌치코트

1899년 보어전쟁 당시 무겁고 불편했던 군용 방수복의 효율성을 찾던 중 버버리의 개버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장교들을 위한 군용 방수복을 주문 제작한 것이 오늘날 트렌치코트의 시초인 타이로켄 코트이다. 샤워 가운처럼 여밈 단추가 없는 레인코트로 단추 대신에 벨트 끈으로만 묶는 것이 특징이었다.

점차적으로 발전한 코트 디자인은 단추로 앞여밈 처리를 하였고 비바람을 막아주는 뒤판 상단의 스톰 쉴드, 소매나 옷 안으로 흙먼지가 들어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소매 끝에 끈을 달고 총을 매거나 쏠 때 옷이 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슴 부위에 덧댄 천 건 패치와 계급을 나타내는 어깨의 견장을 추가하였다.

버버리의 첫 번째 파리 매장
버버리의 첫 번째 파리 매장

허리에 D자형 고리를 달아 수류탄 등을 매달 수 있는 기능적인 요소와 디테일이 특징이었다.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타이로켄 코트에서 진보된 형태의 버버리 트렌치코트가 탄생되었다. 트렌치코트의 용어는 말 그대로 전장의 참호(Trench)를 파서 그 안에 몸을 숨기고 총을 쏘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전쟁 환경 때문에 겨울 참호 속의 혹독한 날씨로부터 영국군인과 연합군을 지켜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버버리의 개버딘 소재의 트렌치코트는 튼튼한 내구성을 인정받으며 군인과 장교들의 의복으로 그리고 모험가들, 스포츠웨어로 기능성 제품으로 인정받으며 영국뿐 아니라 유럽지역으로 수출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영국 왕실의 패셔니스타 에드워드 7세가 즐겨 입었던 옷도 버버리의 트렌치 코트였으며 그는 평소 "내 버버리를 가져오라" 라는 말을 자주하여 사람들이 트렌치 코트를 '버버리'라고 줄여 부르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과 제 1,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도 버버리를 즐겨 입으며 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영국 중세 기마상을 형상화 한 버버리 마크( 출처.버버리 홈페이지)
영국 중세 기마상을 형상화 한 버버리 마크( 출처.버버리 홈페이지)

◆ 중세 기사 형상의 '프로섬' 마크와 체크 무늬의 변천

1901년 라틴어의 '전진'을 의미하는 '프로섬(Prorsum)'은 영국 중세 기사의 기마상을 형상화 한 디자인으로 버버리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1909년 상표 등록을 하였으며 그 해 파리에 첫 번째 매장을 오픈하며 사업을 확장하였다. 엘리자베스 여왕 2세에 의해 영국 왕실의 품질 인증서인 '로열 워런티'를 수여받았으며 여섯 차례 수출상을 수상하며 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되었다.

버버리의 대표 아이템 중 하나인 체크무늬는 1924년 중세 기사 문양과 영국의 전통문양인 타탄체크에서 영감을 받은 체크무늬를 선보였다. 타탄체크는 원래 신분을 나타내었으며 단색에서부터 왕족으로 구분되는 7가지 색으로 구분했다. 고유의 체크무늬를 선보이면서 트렌치코트의 라이닝으로 사용되었으며 버버리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해이마켓 체크는 첫 매장이 위치한 곳의 이름을 본 따 디자인한 가장 기본적인 체크무늬이고 해이마켓 체크 바탕에 기사 문양이 없는 것이 하우스 체크, 그 외에도 노바, 슈퍼노바, 익스플로디드, 스모크드, 더 비트 등의 체크무늬 종류가 있다.

버버리 스카프
버버리 스카프

클래식 체크를 활용한 캐시미어 스카프는 가장 대표 액세서리 중 하나이며 현재는 스코틀랜드 시골의 200년 된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30가지가 넘는 다양한 공정 단계를 거쳐 직조하고 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트렌치코트는 클래식라인을 기본으로 어깨선과 허리라인이 강조된 디자인과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여 더욱 고급스럽고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며 인기 아이템이 되었다.

리카르도 티시가 디자인 한 TB 모노그램
리카르도 티시가 디자인 한 TB 모노그램

◆새로운 변화의 중심된 과거와 현재의 크레이티브 디렉터

2001년 영국 출신의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버버리에 합류하면서 올드하고 고루한 버버리의 이미지를 새롭게 리뉴얼하여 다시 급부상하게 만든 디자이너로 그 공을 인정받아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버버리의 CEO 거치면서 다음 해 3월 브랜드를 떠났다. 2018년 8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리카르도 티시가 발탁되었다.

리카르도 티시는 포토그래퍼 닉 나이트, 그래픽 디자이너 피터 새빌, 스타일리스트 케이티 잉글랜드와 협력하여 창립자 토마스 버버리의 이니셜을 나타내는 'TB' 모노그램과 모노그램 백을 처음 소개하며 브랜드의 새로운 변화를 알리기 시작하였다.

2022년 9월 버버리는 리카르도 티시의 후임으로 보테가 베네타의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디자이너 다니엘 리(DANIEL LEE)를 임명하였고 새롭게 리뉴얼된 로고와 브랜딩에 도입될 혁신을 선보일 계획이다.

버버리 2023 가을겨울 패션쇼. 출처:버버리 홈페이지
버버리 2023 가을겨울 패션쇼. 출처:버버리 홈페이지

◆ 버버리와 한국 브랜드의 법적소송

아시아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남용되는 버버리와 유사한 체크패턴은 늘 브랜드에 악 영향을 미치는 큰 요인이 된다. 상표권에 대한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영국의 버버리는 1998년 한국의 특허청에 상표권 등록 신청을 하였다. 2013년 체크 패턴을 활용하여 상품을 제작한 모 브랜드를 상대로 상표권 침해로 인한 사용금지 청구 소송에서 버버리가 승소하면서 손해배상금 3000만원을 지급하였다. 그 외에도 속옷 브랜드, 애견용품 제작업체, 교복업체 등에 사용된 체크패턴을 문제로 삼았다.

2019년 스커트와 옷깃, 소매 등에 버버리 체크와 유사한 패턴을 사용한 교복업체와 학교에 대하여 2023년까지 유예기간을 주었고 그 이후에는 사용을 금지하도록 하였으며 전국 260여개의 교복에 문제 소지가 있다고 한다. 앞으로 한국에서는 버버리와 유사한 체크패턴을 그 어떤 것에도 사용할 수 없다.

매년 많은 브랜드에서 지식재산권 등록(특허, 실용신안, 상표, 디자인 등)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이면에는 또 많은 분쟁과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창의적으로 개발된 지식재산권은 유사 디자인이 넘쳐나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권리와 방어를 위한 등록이 되어버린 것이 현실이다. 버버리의 상표권 사용 금지를 계기로 디자인도 상표로서 기능을 할 수 있음을 각인하여 다각적인 보호를 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박연미 디자이너 명장,디모먼트 디자이너
박연미 디자이너 명장,디모먼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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