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작가노트로 기록되는 한국사회의 현상
한민규 작, 연출의 <작가노트, 사라져가는 잔상들>(극단 혈우, 아트리버 기획)은 작가의 고백적 서사이다. 과거와 현실의 잔상(殘像)은 작가 노트의 상상과 허구로 재생산되는 희곡의 악보가 되고 연극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되면서도 한민규는 상상과 허구로 쌓여가는 전경의 잔상들을 밀쳐내고 한국 사회 부조리한 현실과 작가의 과거 시간으로 종횡(縱橫)하며 잔상의 기록을 연극으로 올리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현실의 기록이면서도 사라져가는 인물들의 환청 소리를 듣는 작가 내면의 기억으로 닿아 있는 것은 세월호, 서해안 사건과 세 가족 동반자살 사건, 빨간 잠바 소녀의 납치와 죽음의 시간이다. 내면의 파편(破片)으로 박혀 있는 잔상들은 치유될 수 없는 시간의 연속들로 한민규의 상실감은 동일화된 극중 인물 작가(강진휘 분)의 자기 고백으로 드러나면서도 '죽음'으로 망자가 되어버린 시간의 절망감은 미완의 극이 될 수밖에 없는 파편적인 잔상이 되어 온전한 플롯으로 결말을 낼 수 없는 작가 노트로 기록 된다. 극 중 작가의 대사다. "예전에는 잔상들을 구체화 시키려고 했어요. 배워왔던 대로 잔상에서부터 소재를 구축하고 이 이야기가 오늘날 왜 필요한지 생각하고.. (중략) 이렇게 10년을 쓰다가 탁 막혀 버린거예요. (중략) 잔상은 잔상만의 더 중요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극은 상상으로 결말을 내고 인물을 구원할 수 있는 영웅적인 설정들로 허구의 현실을 그려내면서도 잔상의 기록은 한 편의 희곡으로 완결될 수 없는 파편적인 시간 들로 채워져 있다. "인생을 썼다. 한평생 인생을 연극에다 썼다. 연극 같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인생을 연극을 모시며 살았다. 비오나 눈이오나" 연극은 작가의 독백으로부터 시작된다.
무대는 책들로 쌓여있는 도서관 이미지로 채워져 있다. 그 앞으로 작가의 책상이 보이고 뒷면 중앙(문)은 사라져가는 잔상의 과거 시간이 현재로 이동되는 공간이다. 문 벽면의 빼곡한 포스트잇은 작가의 잔상이면서도 한국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죽음들의 기록이다. 무대는 작가의 잔상으로부터 사라져 갈 수 없는 기록들 (세월호와 여학생, 서해안 사건, 아이 유괴 살인사건)과 어린 시절 유치원을 함께 다니며 작가의 집에서 세 들어 살았던 아이와 세 가족 동반자살 이야기가 극중극으로 중첩되며 잔상의 기록을 연극으로 올리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코로나19로 공연 3일 전 무산되고 작가는 종양(腫瘍)으로 사투를 벌인다. 퇴원한 뒤에도 침전(沈澱)되어 있는 잔상의 기억은 시간여행을 통해 인물들을 소환하며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절규와 상실감으로 무기력한 상태를 고백하기도 하고 죽음 이전의 시간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희망을 보이기도 한다. 연극 <작가노트, 사라져가는 잔상들)은 연극인 (작가, 연출, 극단 대표)로 살아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작가의 실제 잔상의 기억들이 극중인물 작가의 고백으로 드러나면서도 시간여행은 꿈처럼 내면을 배회하는 판타지로, 때로는 사라질 수 없는 현실로 그려지는 작가 노트는 사라질 수 없는 잔상의 기록이되면서도 극의 종점은 연극이 된다. 판타지 소설 같으면서도 다큐 적이고, 드라마 적인 작가의 파편적인 잔상들은 작품으로 개발될 수 없는 이야기가 되면서도 작가에게 글쓰기는 현실을 치유하고 연극으로 손상된 시간을 복원해 내는 것이다.
◆ 작가노트, 고백의 서사
프롤로그부터 현실의 참혹한 죽음으로 사라져간 소녀(서지우 분)가 뛰쳐나오고 탈을 쓴 악령들이 뛰고, 소녀 주변을 맴돌고 있다. 악착같이 달리고 소녀는 살고 싶은 욕망으로 죽어서도 숨통을 끊어 버릴 수 없는 것처럼 달린다. 탈은 인간의 영혼이 물화(物化)되어 있는 상태이면서도 생명을 구원하며 현실을 배회하고 있는 잔혹한 사건과 참사의 혼령(魂靈)들이다. 작가는 무릉도원 같은 지역 마을에서 신내림을 받고 무녀로 대를 이어가는 설화 속 소녀 이야기를 통해 세월호 여학생과 유괴범으로부터 사라져간 13세 소녀, 한집에 살았던 아이(소녀)의 존재로 다층화한다. 사라져가는 잔상의 기억들은 주택에 감금되어 펜으로 유괴범의 눈을 찌른 납치사건과 6년 전 공연 도중 듣게 된 세월호 사건의 잔상을 소환하며 작가는" 그 당시 공연하고 있던 작품에서는 진실을 찾기 위해 소녀를 만나러 가는 시간여행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정말 내가 그 시간 여행자가 되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중략) 연극처럼. 진짜 삶이 연극이 된다면... 저 아픔들을 되돌릴 수 있을텐데." 라고 고백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잔상의 기억과 연극은 한국 사회 부조리한 현상들을 담아내고 현실을 타격할 수 있는 시대의 언어로 그려져야 하는 무대이면서도 죽음과 진실을 연극으로 되돌릴 수 없는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해결하고 싶은 욕망을 보이면서도 작품에서까지 비극을 맞이해야 하는 절규를 들어낸다. 작가 노트로 기록된 잔상들은 사라져가는 것이 아니라 소녀를 통해 굿판을 벌여서라도 무녀의 영혼으로 살아있어야 하는 존재가 되었을 때 잔상의 기억은 용서와 자기 치유의 행위로 드러나게 된다. 남해바다 사건으로부터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안산의 한 고등학교 '문학콘서트'의 낭독공연은 극중극으로 장면화를 이루고 작가는 바다의 죽음으로 사라져간 한 여학생의 사진에서 '타임리프' 공연 때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연극이 작가의 작품이 된다.
무대는 잔상으로 사라져가는 노란 우산을 쓴 사진 속 여학생을 극으로 등장시켜 작품(연극)을 통해서도 구해줄 수 없었던'잔상의 극'이 되며 작가는 시간을 바꿀 수 있는 타임리프 작품 결말을 바꾸고 공연을 준비하는데 무산된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환청에 시달리고 소녀의 혼으로 마주하는 유괴 살인 사건과 죽음, 한집에서 살았던 소녀와 가족의 죽음, 세월호의 기억들이 무대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작가는 비로소 잔상의 극에서 작가의 글쓰기로 인물들을 구원해 트라우마로 활보하고 있는 죽음의 기록을 지워내고 기억으로부터 손상된 내면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만나왔던 인물 모두 다 구할거야. 이 세상이 못 구한 사람 모두 다.(중략) 모든 결말을 바꾸겠어. 적어도 내 세계만큼은. 기적은 일어날 수 있어. 그 기적을 만들거야." 판타지적인 설정으로 작가는 시간의 복원을 시도하며 마지막 장면에 작가적 기질을 발휘해 내면을 떠도는 소녀(서지우 분)를 통해 잔상으로 각인되어버린 등장인물의 영혼들과 영적으로 마주하며 자기 치유와 용서를 시도한다. 무대는 남해 바다로 수학여행을 가는 그날로 되돌리고 '쿵' 소리에 배가 기울어가는 시간을 버튼을 누른 것처럼 정지시키고 전원 생존 된다. 세월호와 세 가족의 죽음, 어린이 유괴 살인사건 기억들은 죽음 이전의 온전한 시간으로 되돌려지고 작가의 사라져가는 잔상들은 비로소 무대에서 극이 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은 작가가 구한 생존자의 영혼(우산)들로 소녀의 주변을 떠돌며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잔상의 기록이 되면서도 노란 우산들은 사라져 갈 수 없는 기록들이다. <작가노트, 사라져가는 잔상들>은 극중인물 작가의 1인칭(화자) 시점으로 자기 고백의 서사가 되면서도 파편적인 시간의 잔상들을 묶어내는 극중극과 장면의 전경들은 현실과 판타지 서사의 경계를 활보하며 몰입감을 주면서도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연극적으로 우회하며 배치하는 사라져가는 잔상은 우리 곁으로 매몰되어 있는 기억의 파편이다. 몇 가지 눈에 띄는 장면들이 보였다. 다층적인 소녀의 설정은 '타임리프'처럼 사라져가는 잔상의 시간을 연극적으로 되돌릴 수 있는 작가적 장치가 되면서도 죽음의 기억, 소녀와 작가와의 대화, 소녀의 주변을 배회하는 악령들의 전경화가 이질적인 장면의 분위기가 되었음에도 연출은 연극적인 무대의 판타지로 끌고 가는 동력을 보여주었다. 작가 노트로 사라져가는 시대의 잔상을 통해 부조리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환기하며 이야기로 묶어내는 작가적 설정은 천상 한민규는 이야기꾼인 작가이면서도 연속되는 잔상 사이로 장면을 연속적으로 배치하며 소녀-여학생-빨간 잠바 아이와 작가(화자)-극중극 작가-어린 시절 작가의 이미지를 무대에서 한 인물로 투영시키는 장면에서는 연출 감각이 돋보였다. 특히 이번 무대는 김곽경희, 박신후, 황무영, 이현직의 안정적인 연기로 앙상블을 이루며 작가 노트를 두텁게 만들었고 특히 강진휘의 화술과 연기는 다음 작품이 기대될 정도로 살아있는 몰입감을 주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완성된 온전한 극으로 무대를 타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마치, 작가 노트로 사라져가는 잔상처럼.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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