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다 죽어…소나무 에이즈 확산 최대위기"

입력 2023-03-12 16:16:22 수정 2023-03-12 19:19:20

포항 비학산 가보니…허술한 벌목 이뤄져
4월부터 매개충 본격 활동, 지자체 ‘비상’
"화학적 방제 효과없음 30년간 증명, 대안 검토해야"

지난달 28일 오후 경북 포항 비학산 소나무 재선충병 벌목현장. 잘려나간 감염목에 QR코드를 포함한 밴드가 붙어 있다. 채원영 기자
지난달 28일 오후 경북 포항 비학산 소나무 재선충병 벌목현장. 잘려나간 감염목에 QR코드를 포함한 밴드가 붙어 있다. 채원영 기자

지난 1988년 10월 부산 금정산에서 소나무재선충병이 국내에서는 처음 발견됐다. 실처럼 생긴 0.6~1㎜ 이 작은 선충은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에 기생하며 소나무를 감염시킨다. 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가 100% 말라 죽는다는 점은 여전히 정설로 통한다.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과 중국, 일본, 대만 등 여러나라가 재선충 박멸법을 연구하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우리 산림당국은 농약을 활용한 화학적 방제를 기본으로 재선충과의 전쟁에 나섰지만, 35년이 지난 현재 재선충병 피해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매개충의 활동이 더욱 왕성해 지난 2007년, 2014년 이후 세 번째 대유행이 올 것이란 걱정이 크다. 산림현장에서는 지금이라도 친환경·예방적 방제 등 대안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포항 비학산 가보니…허술한 벌목 한창

재선충의 매개충 솔수염하늘소는 4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각 지자체는 매개충 활동이 왕성해지기 직전인 이달 말까지 고사목을 베어내는 작업을 집중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매일신문 취재진은 지난달 28일 오후 산림기술사, 대구안실련과 동행해 경북 포항 비학산 재선충병 피해 현장을 찾았다. 이곳에 있는 소나무 일부에 둘러진 흰 띠에는 QR코드와 일련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 띠가 둘러진 소나무는 재선충에 감염됐거나 감염이 우려되어 곧 베어낼 '시한부 나무'란 뜻이다. 벌목업체는 흰 띠가 둘러진 소나무를 하나씩 베어나가는 단목벌채를 진행했다. 잘려나간 소나무 밑동에는 다시 표식이 붙었다.

벌목 현장에는 잘려나간 나무에서 흘러나온 나뭇가지가 이곳저곳 흩어졌다. 감염목으로 추정되는데 베지 않는 나무도 많았다. 이를 지켜보던 윤상갑 산림기술사는 "감염목의 나뭇가지를 없애지 않으면 방제 효과가 없다. 분명히 감염목인데 제외되는 나무도 많다"며 "재선충은 강한 바람을 타면 30㎞ 이상 날아간다. 벌목은 재선충 방제에 효과가 없고 생태계만 황폐화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윤 기술사는 이어 "산림청이 올해 재선충병 피해 예측치를 78만에서 93만 그루로 높였는데, 이것도 너무 적게 잡은 것"이라며 "표준지 조사를 통해 올해 재선충병 피해 규모를 예상해보면 222만 그루 정도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14년 2차 대유행 당시의 218만 그루를 뛰어 넘는 숫자다.

지자체들도 재선충병 3차 대유행을 우려하고 있다. 경북도 산림자원과 관계자는 "포항을 비롯해 안동, 경주, 구미, 고령 등 도내 5개 시군이 특히 재선충병 발생이 심한 곳"이라며 "3월 말까지 동원 가능한 최대 인력을 활용해 방제를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대구시 산림녹지과 관계자는 "팔공산과 앞산에 재선충병이 침투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재선충병 발생지와 청정 지역 중간지대 방제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4월이면 매개충이 성충이 돼 날아가기 때문에 그 전까지 최대한 베어내야 한다"며 "올해는 2014년 이후 최대 위기라는 말이 많아 비상상황실까지 꾸려 악전고투 중이다. 그러나 물리적인 방어가 굉장히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8일 경북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일원의 소나무 숲에 재선충병이 확산돼 말라죽은 소나무가 늘어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8일 경북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일원의 소나무 숲에 재선충병이 확산돼 말라죽은 소나무가 늘어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농약 동원한 재선충병 방제, 결과는 대실패

정부의 재선충병 방제는 결론적으로 실패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양한 농약을 총동원해 재선충병에 대응했지만, 피해 면적과 지역이 계속해서 늘어났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발견된 재선충병은 현재 강원도 최북단까지 올라왔다. 피해 면적도 지난 2017년 277만3천㏊에서 지난해 368만3천㏊로 늘었고, 같은 기간 피해 시군구도 115곳에서 137곳으로 증가했다.

정부는 지난 2015년 "2017년까지 소나무재선충병을 완전 박멸하겠다"고 밝혔지만 수포로 돌아갔고, 지난해에는 방제 목표를 '2030년까지 피해목 10만 그루 이하 관리'로 변경했다.

재선충병 방제 실패는 결국 방제방법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림당국의 방제방식은 ▷벌채 뒤 훈증·파쇄 ▷나무주사 ▷항공·지상 농약 살포 등 크게 3가지로 나뉜다. 모두 메탐소듐, 아바멕틴, 티아클로프리드 등 농약 성분을 활용한 화학적 방제다.

윤 기술사는 "방제의 초점은 재선충을 잡는 데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방식은 매개충만 죽이고 재선충은 잡지 못하고 있다"며 "농약을 동원한 방제로는 재선충을 잡을 수 없다는 점이 지난 30년간 증명됐는데, 산림청은 여전히 화학적 방제를 고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학계에서는 공중에서 살포하는 항공방제를 중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정종철 곤충학 박사(곤충생태환경연구소장)는 "대규모 항공방제는 재선충뿐만 아니라 다른 생태계까지 무작위로 파괴한다"며 "하늘에서 (농약을) 뿌리는데 재선충만 골라 죽이는 약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꼬집었다.

산림청도 지난달 22일 이같은 학계의 지적을 일부 받아들여 헬기를 이용한 대규모 방제는 중단하고 드론을 활용한 소면적 정밀방제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강혜영 산림재난통제관은 "소나무 재선충병 항공방제 약제에 대한 우려에 충분히 공감해 중지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러나 드론방제 역시 화학적 방제임에는 변함이 없다. 김중진 대구안실련 공동대표는 "농약을 이용한 방제는 재선충의 활동을 잠시 지연시키는 효과만 있고 결국 소나무는 죽게 된다"며 "지금이라도 친환경 방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