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발해渤海는 발조선發朝鮮의 바다 발해發海였다
◆중국 대륙의 북쪽에 있는 바다 발해渤海
발해는 역사상에서 군郡의 명칭이나 국가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발해는 요녕성, 하북성과 산동성 북부에 걸쳐 있는 바다를 가리킨다.
발해는 우리나라에서 보면 서쪽이지만 중원 즉 하남성, 섬서성 쪽에서 바라보면 북쪽에 있다. 그래서 고대에는 오늘의 발해를 북쪽에 있는 바다란 뜻으로 북해北海라 불렀다.
춘추시대의 '관자', '열자', '묵자', 전국시대의 '맹자', '장자' 등에 북해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데 제자백가에 나오는 북해가 오늘의 발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예컨대 '맹자'에 "백이가 주왕을 피하여 북해의 바닷가에 살았다. (伯夷避紂 居北海之濱)"라고 말하였다. 백이는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 먹으며 살다가 죽은 것으로 유명한 인물인데 지금 발해 연안의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 부근에 그 유적들이 보존되어 있다.
맹자가 발해 연안에 살았던 백이를 가리켜서 북해의 연안에 살았다고 말한 것을 본다면 오늘의 발해가 맹자시대에는 북해로 불렸음이 확실하다.
최근 발해 연안 조양시 부근에서 명문이 새겨진 고죽국의 술독 고죽뇌孤竹罍가 발견되었다. 이는 백이의 나라 고죽국이 발해 연안에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고고학적 근거가 된다.
'전국책' 제책齊策에는 "북쪽에 발해가 있다.(北有渤海)" '사기' 소진열전에는 "북쪽에 발해가 있다.(北有勃海)" '사기' 진시황본기에는 "발해에 임하였다.(臨渤海)" '사기' 고조본기에서는 "북쪽에는 발해의 이로움이 있다.(北有勃海之利)"라고 하였다.
이는 오늘의 발해渤海가 중국 역사상에서 북해 또는 발해渤海, 발해勃海로 표기되었음을 말해준다.
◆발해渤海는 원래 발조선의 바다 발해發海였다
발해유역에서 최초로 건국한 나라는 밝족의 환국이고 환국을 이어서 건국한 나라가 발해조선이다. 발해환국은 내몽골 적봉시에서 발굴된 홍산문화가 이를 증명하고 발해조선은 "발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으니 그 이름을 조선이라 한다"라고 말한 '산해경'에 의해서 입증된다.
이 발해의 모퉁이에 있던 나라 조선을 '관자'에는 발조선發朝鮮이라 표기하고 있다. '관자'는 왜 조선이란 나라 이름 위에 발자를 덧붙여서 발조선이라 하였을까. 조선이 밝족이 세운 밝달나라였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발해가 발해渤海로 표기되고 있다. 발해渤海의 발渤은 크다는 뜻으로 대해大海라는 말과 같다. 그러나 고조선시대에는 여기에 밝족이 세운 발조선發朝鮮이 있었고 그래서 이 바다를 가리켜 밝족의 바다(發海)라 불렀으며 이를 음차하여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뒤에 발해渤海로 바뀌게 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오늘 발해의 '발'은 원래 발조선發朝鮮의 '발'에서 유래했고 발조선의 발이 오늘 발해의 어원이라고 믿는다.
◆발해는 동양문명의 발상지이자 천연자원 보고
우리는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황하문명이 중국문명을 대표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고고학의 발달과 함께 발해유역에서 중원보다 앞선 찬란한 홍산문화가 발굴되면서 중국문명을 대표하는 것은 황하문명이 아니라 발해문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발해의 연간 어류생산량은 49만 톤에 달한다. 발해유전은 중국 최대의 원유생산기지이다. 2022년 한 해의 원유생산량은 약 3,175만 톤을 달성했다.
발해는 또한 중국 최대의 소금 생산기지이기도 하다. 중국의 4대 해염海鹽 생산기지 가운데 발해지역에 무려 3개가 몰려 있다. 따라서 발해는 동양문명의 발상지이자 천연자원의 보고라고 말할 수 있다.
◆밝족이 발해의 첫 주인
오늘날은 한족이 북경을 수도로 정하여 발해의 주인이 되어 있다. 그러나 서주西周, 한, 당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역사상에서 한족의 주요활동 무대는 황하중류의 함양, 장안, 낙양이다. 북경 일대는 요, 금, 원, 청 등 동이족의 주요 생활근거지였다.
그리고 3,000~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발해유역의 최초의 주인은 밝족이고 이들 밝달민족이 발해유역에서 세운 국가가 밝조선이었다. 밝족의 나라 밝조선 땅에 있는 바다였으므로 밝바다 밝해發海라 호칭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지금 요녕성을 가로질러 발해로 유입되는 요하를 고구려 때는 고구려 땅에 있는 강이므로 구려하, 요나라 시대에는 요나라의 강이므로 요하라 불렀던 것과 같은 원리이다.
수양제, 당태종이 고구려를 공격할 때 "요수와 갈석산에 가서 죄를 묻겠다(問罪遼碣)"고 말한 것을 본다면 요수와 갈석산이 고구려의 상징임을 알 수 있다.
고조선의 상징은 발해와 갈석산이다. 갈석산은 고조선의 서쪽에 있던 산이고 발해는 고조선의 동남쪽에 있던 바다이다. 고구려의 상징이 "요갈"이라면 고조선은 "발갈"로 상징되었다.
사마천 '사기'의 천문지와 화식열전에 "발갈勃竭"이라 말하여 발해가 갈석산과 함께 등장한다. 이는 발해가 밝조선의 바다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간접 증거가 된다.
오늘날은 발해渤海로 표기되어 한자 의미는 바뀌었지만, 여기에 발조선에서 온 고유의 음 발發은 살아 있다. 이것이 발조선이 발해의 어원이자, 밝족이 발해의 첫 주인이라는 유력한 근거이다.
◆발해조선의 역사를 되찾아야 밝족의 새로운 웅비시대 열린다
지난 수천 년 전 고조선시대에 발해유역은 밝족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지금 발해는 중국 한족의 강역에 포함되어 우리 한민족의 뇌리에선 사라진 지 오래다.
한국인 대부분의 뇌리에서 발해는 당연히 중국 한족의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발해가 우리 조상의 숨결이 어린 영토라는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불과 200여 년 전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였고 100년 전 중국대륙은 여진족 청나라 땅이었다. 겨우 100년~200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우리의 기억 속에 그것은 희미하다.
밝달민족이 발해유역 오늘의 북경 동남쪽에 조선을 건국한 것은 4,000전의 일이다. 불과 100~200년 전의 일도 까마득한데 천 년의 세월이 네 번이나 지난 오늘, 발해유역에서 수천 리 떨어진 한반도라는 좁은 땅에서 뿌리내려 살아가는 우리가 그 옛날 밝달민족의 원류인 발해를 망각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조상은 발해유역의 산동반도, 요동반도, 한반도를 누비며 천하를 경영했다.
발해조선, 발해고구려, 발해백제의 찬란한 역사가 발해유역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우리가 오늘날 비록 한반도를 무대로 살아가더라도 동양문명의 발상지이자 자원의 보고인 발해만을 터전으로 삼아 대륙을 지배했던 위대한 역사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대식민 사관의 영향으로 송두리째 잃어버린, 발해유역에서 펼쳐진 장대한 우리 민족의 웅혼한 역사를 되찾아야 밝족의 새로운 웅비 시대가 열린다.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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