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 수필가(미니픽션작가)
나의 고향에는 '사고뭉치등거리' 라는 말이 있다. 밥 먹듯 사고나 치고 넘어지면 막대기 타령이나 하며 불안감을 유발하는 사람. 구태여 덧붙이자면 어른이 되어서도 허파에 쉬슨 사람들을 말한다.
돌연 이 단어에 천착하는 이유를 되짚어 봤다. 세속적인 욕망에 눈먼 이들이 거문고 꿰차고 산중에 들앉은 작금의 세태가 고울 리 없어서다. 이참에 '아이 사고뭉치등거리'였던 나를 고백한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내 감정들은 소 치는 목동의 회초리나 다름없었다.
김홍도 흉내를 낸답시고 엄마의 광목 치맛자락을 잘라 그림을 그렸다. 피라미가 살던 웅덩이에 소금을 넣었더니 바다는커녕 물고기만 둥둥 떠올랐던 일.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단막극을 재현하느라 아버지의 막걸리 주전자에 구멍을 뚫어 바람과 빗소리를 만들고, 무지개를 찾아 몇 개의 능선을 넘었어. 밀밭골에서 잡아 온 새끼 노루한테 어쩌자고 보리밥은 먹였을까.
그리 사부작사부작 일을 질렀다. 생각해보면 소모적이거나 쓸데없는 짓들. 그 어떤 것도 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렇지마는 부모님은 내게 글러 먹었다거나 골칫덩어리라고 부르지 않았다.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아주 모범생이었고 아주 사고뭉치였으니.
사고의 부재는 왜 생길까. 아무래도 감정의 요소와 밀접하단 생각이 요즘 든다. 남미대륙 최남단에 사는 '야간족'이라는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마밀라피나타파이'라는 단어가 있다. 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이면서도 자신은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해서 상대방이 자원하여 해주기를 바란다는 뜻이라고 한다. 핵심은 감정의 부재로 압축하면 될 것이다.
문득 그때의 나를 떠올렸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읽어주지 못한 가족이나 곁의 사람. 그들이 '쟤는 이렇게 해주었으면 좋겠구먼' 하는 심리. 둘의 관계엔 괴리가 있을 것이다. 즉, 사고를 치는 피의자와 사고의 결과물에 선 피해자. 둘 사이에는 항시 보이지 않는 다양한 감정이 충돌하고 부딪친다. 시간이 흐르면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가며 성장하기까지는 치는 자와 받히는 자가 될 것이다. 그렇게 사고뭉치등거리는 적정한 선에서 멈추어야 한다.
사고와 감정의 부재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떻게 될까. 유머러스하게 해석해보자면 사고(思考)를 하지 않아 사고가 굳어 버렸다는 표현 정도가 맞겠다. 뭉쳐 있으니 날카로운 비판은 고사하고 풍자나 해학마저 품을 줄 모르는 게지. 기득권 세력에 편승하여 권력을 지배하는 사이클에 안주하고 있으니 사유하며 성찰한다는 자체가 낯설지 않았을까. 생각 없는 이들이 워낙 생각을 좇느라 쥐구멍에서 다람쥐가 나오는 실상이고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위에서 언급한 단어의 해석은 가볍게 제쳐두고 반대의 측면에서 보자. 강변 버들개지에 코 박고 나비 따라 콧노래 부르다간 헛짓거리라 놀림 받기 일쑤다. 경쟁이라는 놈은 무리를 이끌고 저만치 앞서간다. 잔머리 굴리랴 과도한 눈치 보랴 약아빠진 사고(思考)에 제대로 박힌 생각이 나올 리 만무하잖은가.
그럼 너는 잘하고 있냐고? 맞아 여태 박우물에서 헤엄치고 앉았으니 궁리가 서겠는가. 아직 '아이 사고뭉치등거리'에서 어른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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