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처럼 되고 싶다'…음지에서 퍼지는 '프로아나'

입력 2023-03-05 16:22:50 수정 2023-03-05 22:45:59

폭식, 구토 반복…언제 폭식할지 몰라 늘 불안감 시달려
프로아나 자처한 10대들 "키는 포기하고 살 뺄 것…건강 상해도 괜찮아"

청소년들이 모인 프로아나 오픈채팅방에서 다이어트 의지를 북돋우기 위해 공유하는 사진. 출처 프로아나 오픈채팅방
청소년들이 모인 프로아나 오픈채팅방에서 다이어트 의지를 북돋우기 위해 공유하는 사진. 출처 프로아나 오픈채팅방
청소년들이 모인 프로아나 오픈채팅방에서 다이어트 의지를 북돋우기 위해 공유하는 사진. 출처 프로아나 오픈채팅방

'프로아나족'(극단적으로 마른 몸을 지향하는 사람)을 자처하며 말라가는 소녀들이 늘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 이후 비만율 급증이 사회문제화하는 가운데 10대들을 중심으로 극단적 마른 몸매를 동경하는 문화가 동시에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좋아하는 연예인처럼 되기 위해, 혹은 일상에서 들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은 뒤 음식을 먹지 않기 시작한다. 그러다 살이 빠지고 신체·정신적으로 이상이 생긴 뒤에도 자신이 뚱뚱하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어 식욕을 줄이는 과정에서 더욱 음식에 집착하면서 폭식과 굶기를 반복하게 된다.

최근에는 SNS 등으로 모인 이들이 서로에게 굶기를 권장하면서 청소년들을 더욱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폭식·굶기 반복…저체중 될 때까지 감량

고등학교 2학년 A양은 162cm에 51kg의 정상 체중이지만 지난 겨울방학 때부터 식사를 거의 하지 않는 초절식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A양은 최근 인기 있는 여자 아이돌 가수와 같은 몸이 되려면, 계속 굶으면서 살을 빼야 한다는 말을 듣고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A양은 "강냉이나 영양바를 학교에 가져가 배가 고플 때마다 조금씩 먹고 있고, 급식을 최대한 먹지 않으려고 배식 당번을 자원했다"며 "여리여리하고 팔다리가 한 손에 잡히는 몸이 될 때까지 계속 살을 뺄 것"이라고 말했다.

극심한 다이어트를 하는 이들은 비쩍 마른 몸매를 원하기 때문에 대부분 정상 체중임에도 체중 감량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선택한 다이어트 방법은 거의 '무작정 굶는 것'이다. 운동과 균형 잡힌 식단을 병행하며 감량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올해 고3이 된 B양은 지난해 극심한 체중 감량을 하면서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키 165cm에 57kg로 정상 체중에 해당했지만 '다리가 굵다'는 아는 언니의 농담에 큰 충격을 받아 살을 빼겠다고 결심했다.

아침은 시리얼 조금, 점심은 집에서 가져간 비스킷과 음료, 오후 6시 이후에는 물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극단적 절식으로 지난해 한 달 만에 8kg을 감량했다. 드디어 다이어트에 성공하는가 싶었지만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기 시작했다.

B양은 "40kg 대를 찍고 나서 2달 정도 생리가 멈췄고 굶어서 체중을 감량해서인지, 이후 음식에 대한 집착이 커졌다. 밥을 다 먹은 뒤 과자 몇 봉지를 한꺼번에 폭식하고, 죄책감이 들어 또 굶기를 반복했다"며 "결국 요요현상이 와 2주 만에 원래 몸무게로 돌아왔고, 새로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B양이 요즘 일상에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식욕을 억제하는 일이다. 음식을 절제하다가도 언제 또 폭식을 하게 될지 몰라 늘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는 "음식을 먹고 싶을 때마다 입에 얼음을 머금고 있거나, 양치하기, 제로콜라 마시기 등으로 식욕을 절제한다"며 "나도 모르게 미친 듯이 폭식을 하고 난 뒤에는 굶는 고생을 다시 하기 싫어 일부러 토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음지에서 퍼지는 '프로아나'

최근 익명의 오픈채팅방이나 SNS와 같은 음지에서는 어린 학생과 젊은층을 중심으로 거식증을 추구하는 '프로아나'가 유행처럼 확산하고 있다.

'뼈말라'(뼈만 남은 수준의 몸), '프아'(프로아나의 줄임말), '물단식'(물 외에 아무것도 먹지 않는 단식) 등의 키워드로 채팅방 등에 모인 이들은 서로에게 굶기를 독려하고, 식욕을 참는 비결을 공유한다.

이들은 '키빼몸'(키에서 몸무게를 뺀 숫자)을 최소 120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씹뱉'(씹고 뱉기), '폭토'(폭식한 뒤 토하기) 등의 방법을 공유하며, 살이 찌는 것에 대해 극도로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마른 여성의 사진을 공유하거나, '너가 삼킬 수 있는 건 물뿐이야. 필사적으로 참아', '한 달 굶으면 15kg, 두 달 굶으면 30kg' 등의 글귀를 공유하며 서로 굶기를 권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오픈 채팅방에 들어가자 10대라고 밝힌 청소년들은 몸무게를 줄이고자 복통이 덜한 변비약 종류를 서로 추천하거나, 방에서 부모님 몰래 토한 뒤 안 걸리는 법, '먹임 당함'(약속 등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밥을 먹는 것)을 피하는 법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지금 당장 살을 빼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키는 포기하고 굶을 것"이라며 "개학을 하는데, 급식을 먹어야 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몸이 좀 상해도 괜찮으니 다이어트 보조제나 약을 추천해 달라"고 말했다.

청소년들이 모인 프로아나 오픈채팅방에서 다이어트 의지를 북돋우기 위해 공유하는 사진. 출처 프로아나 오픈채팅방

◆마르거나 뚱뚱해지는 학생들

프로아나 영향은 대구 청소년 몸무게 변화로도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 이후 비만율 급증이 사회문제화하는 가운데 저체중 비율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2018~2022년 대구시교육청이 지역 표본학교 내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비만율을 조사한 결과 이 기간 저체중과 비만 학생의 비중은 각각 증가한 반면, 정상 범위의 학생 비중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저체중 학생 비중은 4.3%에서 4.9%로, 비만인 학생은 16.2%에서 19.6%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저체중인 여중생의 비중은 3.1%에서 4.9%로, 저체중 여고생은 4.8%에서 5.5%로 증가했다.

또한 시교육청의 학교건강검사 결과에 따르면 2019년, 2021년, 2022년(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해 일부 학교만 검사를 실시해 제외) 대구 내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의 평균 키는 160.3cm→161.1cm→161.2cm로 조금씩 커지고 있지만, 평균 체중은 55.2kg→54.7kg→53.8kg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대구 내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의 평균 키는 170.5cm→171.2cm→171.5cm 등으로 마찬가지로 소폭 증가했고, 평균 몸무게는 65.4kg→68.2kg→66.4kg로 뚜렷한 경향성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