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수사본부장 낙마…與 "그나마 다행" 野 "대국민 사과"

입력 2023-02-26 17:32:17 수정 2023-02-26 20:43:17

'학폭 논란' 인사 검증 실패 공방…與 "국민 정서 고려 빠른 대처"
野 "인사 검증 개편·진상 규명"
대통령실 "검증 아쉬움 많다"면서도 "자녀 검증 한계 있어"

검사 출신인 정순신(57·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가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임명 취소됐다. 연합뉴스
검사 출신인 정순신(57·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가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임명 취소됐다. 연합뉴스

자녀의 학교폭력 문제로 정순신 변호사가 국가수사본부장에서 중도낙마한 것을 두고 인사 검증 실패 논란 등 여야 책임 공방이 거세다.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등 '사법리스크'로 수세에 몰린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정 변호사 낙마를 역공의 기회로 삼으려는 듯 맹공을 퍼붓고 있다.

학교폭력이 국민 일상과 밀접한 민생 이슈인데다 검찰 출신인 정 변호사의 낙마와 민주당이 연일 날을 세우고 있는 '검찰 독재' 이슈와 맞물리면서 호기를 잡은 모양새다.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26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대한민국을 '검사 왕국'으로 만들려는 행태를 언제까지 할 것인가"라며 "검사로 국가를 운영하려는 '검찰 통치체제'를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런 검찰 집단과 그 자녀가 승승장구하는 대한민국이 우리가 바라는 대한민국인가"라고 반문했다.

민주당은 인사 검증에 실패한 윤석열 정부와 대통령실에도 책임을 물었다. 김의겸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정 변호사 사퇴로 끝날 게 아니다"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인사 검증을 했는지, 했다면 (아들 관련 논란은) 왜 빠트렸는지 해명하라"고 촉구했다.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을 담당하는 인사검증관리단은 법무부 산하다.

오영환 원내대변인도 국회 브리핑에서 인사 검증과 관련 있는 대통령실 이원모 인사비서관,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검찰 출신인 점을 들어 "검찰 출신에게는 인사 검증 '프리패스'가 주어지느냐"고 꼬집었다.

민주당은 정 본부장의 사퇴를 당연한 일이라면서 대국민 사과를 촉구하는 한편 인사 검증 조직 개편, 학교폭력 진상규명 TF 구성 등 추진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관련 상임위원회 간사들이 참여하는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필요하면 관련 TF(태스크포스)를 꾸려 해당 학교폭력의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정 변호사의 사의 표명과 대통령의 임명 취소 등 발빠른 대처에 대해 대체로 후한 점수를 주면서 민주당의 '부실 검증' 비판에는 '정치 공세'라며 되받아쳤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사안의 심각성이나 국민 정서를 고려했을 때 국가적 중책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더 늦지 않게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평했다.

양금희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민주당은 법무부 장관을 겨냥해 검증 부실 책임을 지우겠다며 정치 공세에 한창"이라며 "불과 몇 해 전 입시비리로 대한민국 학부모들, 청년들의 공분을 일으켰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국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임명을 강행했던 민주당이다. 벌써 잊은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사 검증은 적법절차에 따라 공적 자료를 토대로 이뤄지기 때문에 가족 관련 사항이 사전에 모두 걸러지지 못하는 내재적 한계가 있는 것도 현실"이라며 "이를 알면서도 정치공세로 몰아가는 것은 후안무치이자, 국정 발목잡기"라고 비판했다.

전날 논평에선 "민주당이 내로남불 정당이 아니라면 정청래 의원 자녀의 여중생 성추행·성희롱 의혹부터 조사하라"며 "정 의원은 자녀 문제에 대해 사과는 했으나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일단 '검증에서 문제가 걸러지지 못한 부분에 대해 아쉬운 점이 많다'며 인사 검증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도운 대변인은 26일 브리핑을 갖고 "현재 공직자 검증은 공개된 정보, 그리고 합법적으로 접근이 가능한 정보, 그리고 세평 조사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며 "이번에 공직후보자 본인이 아니라 자녀와 관련된 문제다 보니 미흡한 점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는데,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공직후보자 자녀에 대한 검증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책임에서 한 발 비켜서는 듯한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현행법에서 자녀와 관련해 검증할 수 있는 부분들이 국적, 주민등록, 범죄 경력 등 규정돼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학교생활기록부, 원피고 소송 진행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후보자 개인에 대해선 철저하게 검증을 하는데, 자녀 또는 부모 검증에는 조금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다.

나아가 전 정부의 검증 문제를 언급하면서 현 정부의 인사 검증 한계의 정당성을 우회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검증과 관련해 가장 좋은 것은 가급적 많은 정보를 취합하는 것이지만, 앞서 정부에서도 개인정보를 너무 찾다 보니 민간인 사찰이 아니냐는 논의가 있었다. 그렇게까지 가서 되겠느냐"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건 아니니 검증을 위해 조금 무리하게 자료를 수집하는 건 지금 윤 정부에서는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행법에서 할 수 있는 합법적 범위 안에서 개선 방안이 있는 지 검토 중에 있다. 적당한 때가 되면 공유하겠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자녀의 학교폭력 문제가 드러난 정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 임명을 하루 만에 취소했다. 윤 대통령은 24일 오전 정 변호사를 제2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한 뒤 이튿날 오후 7시 30분쯤 임명을 취소했다고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김 수석은 "임기 시작이 내일(26일) 일요일인 만큼 사표 수리를 하는 의원면직이 아닌 발령 취소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정 변호사는 임기 시작을 하루 앞둔 25일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아들 문제로 국민들이 걱정하시는 상황이 생겼고 이러한 흠결을 가지고서는 국가수사본부장이라는 중책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국가수사본부장 지원을 철회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