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달 작가
안동·예천 행정구역 통합을 두고 지역 간 갈등이 첨예하다. 반대쪽 진영에서는 '지역 간 정서적 유대감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안동·예천의 역사적 동질성을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소 잡은 따나 잘 지내시소. 화장실은 개잡은데 있으이께네 걱정 마시소."
사투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소' '개'를 잡는 듯한 말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래전 고향을 떠나 서울살이 중인 안동과 예천 사람들은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다. 언어권이 같다는 것은 문화나 생활권이 같다는 말이다.
안동 지역에서는 '안동에서 성공한 사람 절반은 예천 출신'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예천 출신들이 안동 지역의 주류층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이다. 양 지역 간 정서적 유대감이나 동질성이 없다는 말이 얼마나 설득력이 없는지 단적으로 말해 주는 대목이다.
특히 안동과 예천은 조선조에서 근·현대사로 이어지는 수백 년을 학맥과 혼맥, 인맥으로 얽히고설켜 있는 흔적과 기록들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기에, '서로 다른 남남'이라는 주장은 더욱 설득력이 없다.
퇴계의 종손자 우암 이열도가 세운 '선몽대', 퇴계의 수제자인 서애 선생이 쉬어 갔던 '서애 선생 장구지소 수락대'는 예천의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예천 사람들도 자랑거리로 삼는 장소다.
예천 호명에는 우암의 백송파 외에도 대중리에 퇴계의 셋째 형 이의 가문이 세거하고 있으며, 고미에는 퇴계의 숙부 송재 이우의 후손인 송당파가, 내동에는 퇴계의 바로 위 형인 온계 이해의 후손인 백당파가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문화재의 보고인 금당실 입향조 박종린의 부친 박눌은 안동의 보백당 김계행의 첫째 사위로 다섯 아들 모두를 문과에 급제시킨 인물이다. 예천 지보 출신 박치의 딸인 퇴계의 모친 춘천 박씨는 박종린과 고종 간이다.
안동 내앞의 학봉 김성일의 동생 남악 김복일도 예천의 초간 권문해의 누이에게 장가들어 구계에 살았는데, 남악종택과 증손 김빈의 반송고택이 지금도 금당실에 남아 있다.
이와 반대로 예천 사람 석문 정영방은 학봉의 생질인 안동 무실 류복기의 딸과 결혼하고 이후 영양으로 이주해 인공 정원의 백미인 서석지를 조성했다.
학맥도 다를 바 없다. 퇴계의 제자인 구계의 이중립과 그의 동생 이개립 문하에서 많은 인재들이 배출됐다. 호명의 연안 이씨 제자들인 이응·이희·이유 3형제 또한 지역사회에서 명망이 높았다.
특히, 예천이 자랑하는 약포 정탁과 초간 권문해는 퇴계의 이름난 제자들인데 안동 하회의 서애 류성룡과 더불어 죽음을 불사하며 이순신을 구하고 임란을 극복한 위대한 인물들이다.
임금의 병을 여러 번 고치고 백성들에게 인술을 펼쳐 예천이 자랑하는 인물인 국창 이찬은 서애의 생질인데, 그의 부인 김영인은 안동 와룡면 군자리 설원당 김부륜의 딸이자 계암 김령의 누이다.
안동·예천의 혼반과 학맥, 그리고 문중 간의 연대 고리는 임진왜란·영남만인소·항일의병·독립투쟁 등 역사의 고비마다 큰 힘을 발휘했다.
조상들이 함께해 온 이러한 연대적 저력이야말로 바로 지금 필요하다. 무조건적 행정통합 찬성이나 반대가 아니라 역사적 동질성을 이해하고,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진정 양 지역이 모두 승리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길 바란다.
이를 위해 양 지역 정치적 기득권들이 욕심을 버려야 한다. 주민들이 결정하도록 공론의 장을 만들고, 그들이 듣고 판단해서 결정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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