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광구 일본 영해 편입 가능성…손 놓고 있다가 '산유국의 꿈' 빼앗긴다

입력 2023-02-19 17:02:33 수정 2023-02-19 20:54:44

박정희 정권 당시 7광구 소유권 선포…1978년 日과 협정 맺어 공동개발키로
"日 유인책 찾아야"…일본 대응은 지지부진, 5년뒤 협정 종료되면 中 가세할 가능성도
수십년간 국제해양법 바뀌며 거리 가까운 日에 판례 유리
동중국해 유전 개발 中 가세…전문가 "4, 5광구부터 개발을"

한일 대륙붕 공동 개발협정의 만료 시한이 5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7광구를 비롯한 서남해 에너지 자원 확보를 두고 한중일간 자원전쟁이 노골화될 조짐이다. 한국석유공사의 시추선 두성호.
한일 대륙붕 공동 개발협정의 만료 시한이 5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7광구를 비롯한 서남해 에너지 자원 확보를 두고 한중일간 자원전쟁이 노골화될 조짐이다. 한국석유공사의 시추선 두성호.

오는 2028년 한일 공동개발 시한이 만료되면 대륙붕 제7광구가 일본 영해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우리 영해로 선언하고 일본과 공동 개발에 합의했지만 눈앞에서 빼앗길 위기에 처한 것이다.

7광구는 제주도 남쪽과 일본 규슈 서쪽 사이 해역으로, 면적은 남한 영토의 80%가량인 약 8만2천㎢다. 서울과 비교해도 무려 124배에 달하는 광활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 해역에 상당량의 석유가 매장돼 있을 것이란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한때 온 국민이 들썩였다.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 한국에서는 그야말로 '대박' 사건이었다.

◆ '산유국의 꿈' 안긴 대륙붕 제7광구

1968년 UN 아시아개발위원회는 서해·남해 대륙붕 탐사 후 '타이완에서 일본 오키나와에 이르는 동중국해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매장량의 석유자원이 묻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의 '에머리 보고서'를 발표했다. 2004년 미국 국제 정책연구소 '우드로 윌슨 센터'도 '동중국해 천연가스 매장량이 사우디아라비아의 10배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박정희 정권은 '산유국의 꿈'을 이뤄줄지 모를 7광구를 두고 일본과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1970년 6월 박 전 대통령은 '해저광물자원개발법'을 공표해 7광구의 영유권은 한국에 있다고 선포했다. 당시 국제해양법상으론 한국이 소유권을 주장하기 유리한 면이 있었다. 7광구는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깝지만, 우리 대륙붕과 이어져 있었고 이를 근거로 일본에 맞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기술과 돈이었다. 석유를 탐사할 여력이 부족했던 한국은 1978년 6월 22일 7광구를 '한일 공동개발구역(JDZ·Joint Development Zone)'으로 정해 이 해역을 일본과 공동 개발한다는 '한일대륙붕공동개발협정'(이하 협정)을 맺었다. 기한은 50년 뒤인 2028년 6월 22일까지, '탐사와 시추는 반드시 양국이 공동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단서 조항이 달렸다.

그런데 일본은 1986년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돌연 개발 중단을 선언했다.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선언이었다. 단독 개발을 진행할 수 없다는 조항 탓에 한국의 개발 시도도 함께 묶여버렸다. 이후 일본은 탐사를 비롯해 공동연구까지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개발에 뛰어들 수 있는 길 자체가 봉쇄되면서 7광구는 30여 년 넘게 방치됐다.

◆ 협정 만료 때 日 유리…한중일 다자분쟁 가능성도

하지만 일본은 오히려 아쉬울 게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조약이 만료되는 2028년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보다 유리한 입지를 점할 수 있어서다. 1983년 발효된 UN 국제해양법인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이 그 근거다. 이에 따르면 과거 국제법과 달리 육지에서의 거리가 대륙붕 소유권의 기준이 된다.

1985년 국제사법재판소(ICJ)도 대륙붕의 경계에 대해 육지에서 이어진 연장선이 아니라 육지로부터 거리가 기준이 된다는 결정을 내놨다. 이 판례를 따르면 7광구로부터의 거리가 한국보다 가까운 일본이 훨씬 유리해진다. 조약이 만료되면 7광구의 90%가량이 일본에 넘어갈 것이란 관측이 과장은 아닌 셈이다.

반면 한국은 승부를 볼 시간이 많지 않다. 조약 만료 기한이 2028년이지만 조약의 상호 연장이나 파기 통보 시한이 2025년까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조약의 실효는 실제는 3년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2009년 한국 측 조광권자로 한국석유공사를 지정한 후 일본 측에 조광권자 지정을 요청했으나 일본은 조광권자를 선정하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2020년 1월 한국석유공사를 7광구 2·4소구 조광권자로 재차 선정했지만, 일본은 최근까지 조광권자 선정조차 하지 않으면서 개발 중단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중일 다자 간 외교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간 협정 만료 이후 한일 양국 간의 공동개발 협상에 중국이 가세할 것이란 전망이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 동중국해 유전 개발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2008년 중국은 7광구 바로 옆에서 유전을 발견하기도 했다. 지난해 3월 서해 한중 잠정조치 수역에서 중국이 시추시설을 설치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 협정 만료 전 다각도로 해법 찾아야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협정이 만료되기 전에 정부가 다각도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한반도 주변 대륙붕에서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일본과 중국의 물밑 경쟁이 전개되는 상황에서 손을 놓고 있다간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는 지적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소속 박영순 더불어민주당 의원(대전 대덕구)은 에너지 안보나 경제적 측면에서 중차대한 사안인 만큼 조약을 연장하는 데 정부의 역량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과 에너지 동맹을 맺어 외교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진단도 나온다. 안세현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이달 3일 '2023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미국과 에너지 동맹을 맺고 해외자원을 확보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며 "7광구 문제도 미국을 끌어들여서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가져가야 한다.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어 일본보다 에너지 동맹을 맺는 데 훨씬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산자위 소속 김경만 민주당 의원(비례)은 한국이 7광구와 인접한 4, 5광구라도 개발해 일본의 공동개발을 우회적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이 소유권을 갖고 있는 4, 5광구에서 석유가 개발된다면 일본을 자극할 수 있는 유인책이 된다는 것이다.

김 의원에 따르면 한국석유공사는 '광개토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4, 5광구를 포함한 서해 인근 유전 개발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1~2년간 탐사 기간을 거쳐 석유 매장량이 확인된 후에야 시추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의원은 "대한민국은 원유 자급률이 거의 1%도 안 되니까 사실상 에너지 전쟁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차지하려면 우리 스스로가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한다"며 "매장량이 가장 높은 7광구는 양국이 공동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약정이 있기 때문에 단독 개발이 어려우니까 4, 5 광구 등 주변이라도 개발해서 일본을 움직이게 만드는 지원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