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진보・보수 이념 좌표에 반대하는 진영은 좀 더 가치중립적 용어인 좌파・우파로 부르길 원한다. 왜일까? 어감이나 이미지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진보는 새롭게 변화를 추구하고 젊게 느껴지는 반면, 보수는 변화를 거부하고 철 지난 오래된 이미지로 굳어져 갔다. 이렇게 진보・보수 이미지가 굳어지자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 보수 진영 중심으로 보수・진보 대신 좌파・우파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실제 보수 진영에서는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이념 좌표를 좌파와 우파로 바꾸면 분명 좀 더 가치중립적이기는 하지만 또 다른 이념성의 문제가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6・25전쟁을 치른 민족이다. 당시 자본주의는 고사하고 전(前)근대성도 탈피하지 못한 사회에서 자본주의적 적대적 계급적 구조가 존재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좌파와 우파 이념 노선으로 민족적 참극을 치렀다. 전쟁을 일으킨 북한은 민족해방전쟁이라지만, 전쟁의 참혹함과 전후 북한 사회의 정치·경제적 상황 및 그로 인한 북한 인민의 생활상과 인권 문제로 민족해방이라는 명분은 정당성을 상실했다. 특히 전쟁 전후 이념으로 나뉜 좌・우익 테러는 지금도 가장 큰 사회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 결과 '좌・우파'라는 용어는 이념 중첩적인 개념이 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좌・우파라는 용어의 또 다른 문제는 이분법적 극단적 사고 구조다. 통념상 좌・우파라고 하면 좌우의 그 중간이 없다. 그러다 보니 좌・우파의 잣대를 들이대면 자신이 좌파이면 나머지는 모두 우파이고, 자신이 우파이면 나머지는 모두 좌파다. 좌파와 우파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 직후 열린 국민공회의에서 의장석을 바라봤을 때, 오른쪽은 보수적 성향의 왕당파(입헌군주제 주장 지롱드당), 왼쪽은 공화파(급진 개혁 노선 자코뱅당)가 앉았던 것이 유래다. 물론 당시 좌우의 중간 좌석에 중간파인 마레당이 앉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당시 좌우 중간에 앉았던 마레당을 거의 기억 못 한다. 그리고 이들 노선을 중파(中派)라 부르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굳이 용어로 표현하면 회색지대의 회색분자다.
반면 보수・진보 이념 좌표에서는 굳이 중도를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그 중간에 중도가 있다. 그래서 보수・중도・진보로 나눈다. 좌・우파의 이분법 사고에서 삼분법 사고로 바뀌면 그만큼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실제 이러한 중도층은 선거에서 캐스팅보트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사회가 다양화되어 갈수록 진보・보수의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하는 중간지대가 넓어지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보수・진보를 말하는 사람들도 정치에 들어서면 달라진다는 점이다. 말은 보수・진보이지만 사고 구조는 좌우 이분법이다. 단지 선거에서만 보수든 진보든 중도 표가 아쉬울 뿐, 막상 정권을 잡으면 중도가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근대화 이후 민주화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민본 통치 명분의 역사로 인해 누가 대통령이 되든 겉으로는 국민을 위한 국민 중심 국정 운영을 내세웠다.
그러나 통치의 중심이었던 국민을 노무현 정부는 시민, 이명박 정부는 개인, 박근혜 정부는 다시 국민, 문재인 정부는 다시 시민으로 부르며, 국민 중심에서 이탈 현상을 보였다. 급기야 노무현 정부의 정치 선거 전략적 시민사회론이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정 중심으로 되면서, 깨어 있는 '깨시민'이란 우월적 선민의식으로 민주사회에서는 귀를 의심케 하는 '이니(문재인이) 맘대로 해'라는 민주독재 구호까지 등장했다.
결국 하나여야 하는 국민이 둘로 쪼개졌다. 문제는 이분법적 개념은 정치에서 기득권 독점을 위한 진영 논리와 배제 논리가 되고 그 배제 방법은 폭력성을 띠는 매우 반(反)민주적 성격이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87체제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정당 기준 재선에 실패한 첫 정권이 되었다. 국민 중심이 아닌 깨시민 중심 때문이었다. 문제는 보수보다 우파로 칭하기를 원하는 윤석열 정부도 전(前) 정부의 적폐 청산을 내세운 이상 우파 중심 이분법적 국정 운영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그렇게 가고 있다. 그리고 정당화 논리는 간단하다. 문재인 정부의 '미러링'이다. 국민은 당혹스럽다. 이념적 정치 상대는 물론이고 중도도 건너뛰는 정치는 민주화 이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국민의힘 당대표가 선출되면 사실상 내년 22대 국회의원 선거 국면이 된다. 국민은 내년 총선에서 어떤 표심을 보여 줄지, 30년 넘게 여론조사를 해 왔지만 예측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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