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만졌잖아" 지하철 성추행범으로 몰린 남성, 2년 만에 '무죄'

입력 2023-02-14 09:41:20 수정 2023-02-14 09:45:02

재판부 "피해자 추측성 진술로 유죄 선고 어렵다"

6일 오전 서울 1호선 서울역에서 승객들이 지하철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이날 1호선은 지난 4일 전국철도노조가 인력충원을 요구하며 시작한 파업의 영향으로 최대 20분 가량 지연됐다. 연합뉴스
6일 오전 서울 1호선 서울역에서 승객들이 지하철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이날 1호선은 지난 4일 전국철도노조가 인력충원을 요구하며 시작한 파업의 영향으로 최대 20분 가량 지연됐다. 연합뉴스

출근시간대 붐비는 지하철에서 성추행범으로 몰려 재판에 넘겨졌던 남성이 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2부(맹현무 김형작 장찬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남성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4일 밝혔다.

A씨가 성추행범으로 몰렸던 배경은 지난 2020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에서 출근시간대 지하철을 탔던 여성 B씨는 자신의 왼쪽 엉덩이를 누군가가 만졌다고 느끼고, 왼쪽 뒤편에서 하차하고 있던 A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B씨는 "지금 어디를 만지는 거냐"고 항의하며 A씨를 잡으려 했으나 그는 그대로 지하철에서 내렸다. 이후 B씨는 A씨를 뒤따라가서 붙잡고 큰소리로 말을 했다. A씨는 귀에 꽂고 있던 무선이어폰을 빼고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B씨는 경찰에 신고하고 조사에서 "누군가 엉덩이를 만진 직후 돌아봤을 때 A씨와 가장 가까웠다"며 "다른 승객들이 많이 내리고 마지막쯤에 내리는 거라서 승객들이 밀착한 상태도 아니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A씨뿐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팔을 뻗어서 제 엉덩이를 만질 만큼 꽉 붐비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A씨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A씨는 "왼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오른손은 안경을 보호하기 위해 가슴에 붙이고 있다"며 "항상 같은 자세로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모르는 여성의 엉덩이를 만진 적이 없다"고 했다.

A씨는 또 하차 상황에서 B씨가 자신을 부르는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차할 때 밀려 나와서 평소처럼 다른 승객들이 밀친다고 생각했지, B씨가 저를 붙잡으려고 하는지 몰랐다"며 "환승 통로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B씨가 저를 벽 쪽으로 밀치고 나서야 붙잡으려 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하철역 내 폐쇄회로(CC)TV를 확인했으나 두 사람이 지하철에서 하차하는 모습밖에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경찰은 A씨를 추행 혐의로 보고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 또한 그를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1심 재판부부터 A씨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이는 B씨의 진술이 경찰 조사 때와 사뭇 달랐던 게 큰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하철 내에 사람이 많이 없었다고 주장한 B씨의 진술이 재판에서 만원일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고, 하차할 때도 자신의 뒤편에 북적거렸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이에 1심 재판부는 "B씨 엉덩이를 누군가 움켜쥐었다고 하더라도 B씨의 오른쪽에 있던 사람이 왼손을 이용해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바로 왼쪽에 있었던 A씨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무죄 선고 배경을 설명했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는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을 유지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B씨 엉덩이를 만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피해자 B씨의 추측성 진술로 A씨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고 했다. 2심의 무죄 입장 표명과 함께 검찰이 상고를 포기함에 따라 A씨는 2년여 만에 무죄가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