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가짜 환자

입력 2023-02-08 06:30:00

최재갑 경북대학교치과병원 구강내과 명예교수
최재갑 경북대학교치과병원 구강내과 명예교수

진료 현장에서 거짓 증상을 호소하거나 증상을 과장함으로써 의사를 속이려는 환자를 가끔 만나게 된다. 대부분은 의사의 진찰에 의해서 거짓이라는 사실이 금방 들통 나지만 때로는 의사도 깜박 속아서 환자의 기만에 말려드는 경우도 있다. 의사를 속이려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대개 보험금이나 손해배상금을 많이 받으려고 하거나 병역신체검사에서 유리한 판정을 받으려고 하는 환자들 사이에서 이런 일이 가끔 발생한다. 그래서 상해사건에 연루되어 있거나 '병사용진단서'를 요구하는 경우에는 보다 신중하게 환자를 진찰하게 된다.

오래 전의 일이다. 입을 다물 때 턱이 옆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음식을 씹을 수 없다고 하면서 턱교정수술을 요구하는 환자가 타 병원에서 전원 되어 온 적이 있다. 이 환자에게 입을 다물어보라고 하였더니 정말로 턱이 옆으로 돌아가서 치아의 교합이 전혀 맞지 않았다. 그런데 얼굴과 턱 기능에 대한 임상검사와 턱관절 영상검사에서 입을 다물 때 턱이 옆으로 돌아갈 만한 이유를 전혀 찾을 수 없었으며, 환자의 진술과 임상검사 소견 사이에도 어떤 연관성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보아도 이 환자는 입을 다물면서 의도적으로 턱을 옆으로 돌리고 있음이 분명하였는데, 이 환자의 과거 병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런 판단을 뒷받침해주는 정황도 발견되었다. 이 환자에게 턱관절에 이상이 없음을 아무리 설명해도 입을 바로 다물려 하지 않았으며, 결국 수술실까지 가서 수면마취를 함으로써 입이 정상적으로 다물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술실에서 촬영한 입이 바로 다물어진 사진을 환자에게 보여줌으로써 해프닝이 마무리되었다.

가짜 환자의 또 다른 사례로서 '개구장애' 진단을 받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입을 안 벌리려고 하는 환자를 가끔 볼 수 있다. 입이 벌어지는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서 환자에게 입을 크게 벌려 보라고 지시하면 턱에 힘을 주고 의도적으로 입을 안 벌리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도 수면을 유도하거나 턱근육의 긴장도를 관찰해보면 의도적인지 아닌지를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가짜 환자를 가려내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 중에는 진위를 판단하기 곤란한 경우도 있는데, 주로 애매한 통증을 호소하거나 증상이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특히 만성 통증은 외상이나 염증과 같은 기질적 변화가 관찰되지 않는 상태에서 심리적 원인이나 신경성으로도 나타날 수가 있기 때문에 만성 통증의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연초부터 가짜 뇌전증 환자의 병역비리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뇌전증의 증상이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환자나 보호자의 진술이 뇌전증의 진단에 크게 참고가 된다는 점을 악용하여 '뇌전증 환자 연기'로 의사를 속였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번 일로 병역신체검사에서 뇌전증에 대한 판단이 엄격해지면 진짜 뇌전증 환자가 선의의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열 사람이 지켜도 한 도둑 못 막는다.'는 속담이 있다. 나쁜 짓을 하려고 하는 사람을 근절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우리가 꿈꾸는 21세기 선진복지국가는 '정직한 사람, 정직한 사회'의 구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최재갑 경북대학교치과병원 구강내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