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한국은 2023년 들어 대중 무역적자 때문에 고민이다. 돈 잃고 마음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돈을 잃은 이유가 상대의 핍박과 보복 때문인지, 자신의 경쟁력 약화 혹은 상대에 대한 오판이 초래한 것은 없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2023년 주요 기관의 세계 경제성장률 예측치를 보면 여전히 미국의 5배, 한국의 3배 속도로 성장하는 중국을 두고 중국 경제는 끝났다고 하는 것도, 중국에서 빨리 철수해야 한다는 것도 냉정하고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한중 관계는 애증(愛憎)의 관계이다. 6·25전쟁 때 한반도에 진입해 한국을 공격한 중공이 70여 년 지난 지금, 한국의 최대 교역 대상국이 되었다. '안미경중'(安美經中)은 끝났다는 얘기가 범람을 하지만, 정치적 레토릭과 경제적 실리는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
한국의 우방은 옛날에도 지금도 미국이다. 한국은 중국과 안보를 같이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다. 그러나 수출의 24%를 차지하는 중국을 대체할 시장은 5~10년 안에는 없다. 감정의 좋고 나쁨과 돈벌이의 좋고 나쁨은 별개다.
복수는 억울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고 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미중의 경제 전쟁, 기술 전쟁에서 미국이 잡아준 중국의 발목, 한국이 중국의 약점만 쳐다보고 욕만 하고 있으면 의미 없다. 40여 년 전에 미국과 일본에서 배운 기술을 중국에다 팔다가 이제 그 약발이 다했다고 주저앉아 좌절해 있으면 진짜 망한다. 이젠 중국에 없는 기술, 상품, 서비스를 만들지 못하면 중국의 고성장은 그저 '그림의 떡'이고 '배 아픈 사촌의 땅'일 뿐이다.
극중(克中)하려면 지중(知中)이 먼저다. 한국에 앉아서 중국을 유튜브와 언론으로만 배우면 위기론자가 되지만 중국에 직접 가서 보면 실리주의자가 된다. 1980년대에 우리가 극일(克日)하려고 일본과 일본어를 배운 것처럼 중국에 대해 억울하고 분한 것이 있다면 먼저 중국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뛰는 놈을 잡는 것은, 나는 놈이다. 작은 나라가 세계 인구의 5분의 1이나 되는 중국이 달린다고 이를 따라잡겠다고 같이 달리면 가랑이가 찢어질 위험이 있다. 그간 많은 산업에서 경험했지만 중국이 생각하지 못하거나 할 수 없는 분야를 개발하고 집중해야지, 중국과 같이 경쟁해서는 중국을 이길 수 없다.
인건비와 컨베이어벨트 길이로 승부했던 전통산업에서 중국에 대한 미련은 빨리 버리는 것이 맞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 신산업, 신서비스에서는 중국이 신천지이고 미국보다 큰 시장이다. 이 분야에서는 탈(脫)중국이 아니라 진(進)중국 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에서 제외되는 두려움, 중국이 보복하면 어쩌지 하는 공포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하려면 '산업의 쌀'인 반도체가 필요하고 '산업의 심장'인 배터리가 있어야 한다. 지금 미국은 배터리가 없고 중국은 반도체가 없다. 베터리는 중국이 세계 1위이고 반도체는 미국이 1위지만 양국이 협력할 가능성은 제로다. 한국은 반도체와 배터리에서 세계 2위다. 한국은 미중이 필요한 것을 모두 가지고 있다.
배터리와 반도체 때문에 미중은 적어도 3~5년간은 한국에 대해 심한 보복이나 동맹에서 배제하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이 대국이긴 하나 대국이 절절히 원하지만 결핍돼 있는 것을 가지고 있으면 두려워하거나 공포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리고 '안미경중'이 끝났다는 소리만 반복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한국은 '안미경중'이 아니라 명분은 미국을 따르되 실리는 중국에서 챙기는 '명미실중'(名美实中)을 제대로 해야 한다. 지금 자동차, 핸드폰, 전기차, 반도체, 배터리의 세계 최대 시장은 미국이 아닌 중국이다. 이젠 시장으로 중국에 못 미치는 미국에만 집중하다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을 놓치고, 미국에서 대만과 일본이 한국을 대체하는 상황이 생기면 한국은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미중의 4차 산업혁명을 앞에 둔 기술 전쟁 과정에서 미국이 중국의 발목을 잡아준 절묘한 시기에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의 기세를 따돌리고 이참에 한국의 판을 크게 키우는 전략을 제대로 짜야 한다. 정확한 판단 없이 불쑥 내질렀다 뒷감당을 못해 쩔쩔매는 대중 정책, 중국과의 전쟁에서 한국의 최종 병기가 될 반도체 같은 전략산업 육성을 재벌의 수익사업 정도로 인식해 정쟁의 논쟁거리 정도로만 몰아가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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