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 계명대 교수
서양 문학사에서 오디세우스는 제갈공명에 버금가는 그리스의 지략가다. 여자로 변장한 아킬레스를 찾아낸 것도, 목마로 트로이를 함락시킨 것도 그의 머리다. 귀향길에 가로 놓인 수많은 장애와 위험도 계략으로 다 돌파해낸, 그야말로 두뇌 플레이의 고수다. 단테는 그런 오디세우스의 방랑을 앎에의 열정으로 수행한 탐구 여행으로 재해석했다.
이렇듯 '오디세이'의 독자들은 오디세우스의 탁월한 지력에 감탄하느라 그의 미학적 측면은 간과하곤 한다. 눈을 살짝 돌려보면 오디세우스는 고비마다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미적 요인이 작용하지 않는 로맨스는 없다. '오디세이' 서사의 처음과 끝에는 미녀 페넬로페가 버티고 있고 중간에는 요정 칼립소, 마녀 키르케, 공주 나우시카가 오디세우스의 아름다운 짝으로 활약한다. 이들은 오디세우스의 바람기에 넘어간 것이 아니라 그의 아름다움에 반해 먼저 달려든 공격형 여성들이다.
오디세우스의 외모에 관한 서술은 많지 않다. 그러나 '키가 크고 넓은 어깨에(6권) 섬세하고 우아한 디테일이 빛난다'(16권)는 언급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멋진 남자인지 가늠할 수 있다. '물결치는 금발이 히아신스를 방불케 한다'(6권)는 문장을 더하면 실로 완벽한 미남의 형상이 나온다. 여신 칼립소가 오디세우스와 7년을 살고도 권태는 커녕 영원히 함께 살자고 애걸복걸한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조그만 섬나라에서 오디세우스의 지력이나 무용이 필요했던 것 같지는 않다. 키르케나 나우시카도 오디세우스를 보는 즉시 반했다. 이렇듯 여자와 관련하여 오디세우스는 미를 탐하는 주체라기보다는 미적 대상으로 나온다.
오디세우스가 강력한 미적 주체로 움직이는 것은 사이렌과의 조우에서다. 절세의 미녀들을 마다했던 그가 죽음을 무릅쓰고 사이렌에 빠져든다. 그들의 미모 때문이 아니라 노래 때문이다.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노래를 듣는 순간 돛대에 묶인 몸을 뒤틀며 사이렌에게 가겠다고 발버둥 친다. 귀를 막은 부하들이 더 세게 묶지 않았다면 기꺼이 바닷속으로 몸을 던졌을 것이다. 음악의 마력 앞에 그의 이성과 지력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다. 다행히 키르케의 조언에 따라 미리 온몸을 결박해 놓았기에 목숨을 건진다.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음악을 듣고도 살아남은 최초의 인간이다. 그때까지 사이렌의 소리를 들은 사람은 모두 죽었다. 음악의 위력이 이보다 더 강하게 설정된 예는 없다. 오르페우스도 사이렌을 통과했다고 하지만 그는 사이렌의 노래를 자신의 리라 연주로 덮어버려 노래를 듣지 못했다.
오디세우스의 사이렌 사건은 음의 신비와 위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음악 미학적 사건이다. 당대 최고의 지성을 마비시켜버린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헤겔이 말하듯이 음악 안에서는 사고가 멈춘다. 그럼에도 오디세우스는 오디세우스인지라 키르케의 정보를 이용해 음의 원초적 마법성을 심미적 향유의 차원으로 순치시켜버린다. 이로써 음악의 문화·예술적 양식화가 전개된다. 사이렌은 무대의 연주자가 되고, 오디세우스는 부르주아 청중이 되고, 노 젓는 부하는 노동자가 된다. 음악을 접하지도 못하는 노동자들에 의해 공연 시스템이 돌아간다는 점에서 예술의 소외 혹은 노동의 소외라는 모순도 발생한다. 요컨대 오디세우스는 음의 미성(美性)을 근원에서 맛보고 예술화한 미학적 영웅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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