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가 수주·무리한 공기 단축에도 원청은 솜방망이 처벌, 건설노조 재판부 규탄

입력 2023-01-27 17:52:23 수정 2023-01-27 19:42:23

현장 안전 관리는 '사측 관리자'가 업무, 일용직 노동자에게 관리 책임까지 떠맡겨
최저가 수주, 무리한 공사 기간 단축에 현장 안전 위협 받아

27일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대구경북지부가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재판부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주원 기자
27일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대구경북지부가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재판부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주원 기자

지난 2021년 발생한 건설노동자의 산재 사망 책임을 다룬 1심 재판에서 현장 작업팀장이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가운데 건설노조는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며 판결에 반발했다. 공기 단축과 비용 절감 등을 앞세워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한 원청과 하청에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대구경북지부는 27일 오전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가 원청엔 벌금형을, 형틀팀장에겐 금고 8개월형을 선고하고 구속했다"며 "누군가를 처벌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만만한 노동자에게 죄를 덮어씌운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지난 11일 진행된 1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건설 현장의 안전대책 책임 주체를 하청업체로 봤고, 원청업체는 사망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하청업체 A사는 5천만원의 벌금형을 받았고, A사의 현장소장은 징역 10개월을, 형틀 현장에서 거푸집 설치와 해체를 담당했던 형틀팀장은 금고 8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반면 원청업체 B사와 소속 현장소장에게는 간접 책임만 물어 각 300만원의 벌금형만 내렸다.

노조는 "실형을 받은 형틀팀장은 전문업체의 작업 지시에 따라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인원과 업무를 분장했을 뿐 이를 위한 안전한 작업 방법과 유의사항은 '사측 관리자'들이 해야 할 일"이라며 "힘없는 일용직 노동자에게 관리자의 책임까지 떠맡긴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고 당일은 크레인 붐대를 최대한 내려서 작업해야 했고, 바람도 많이 불어 작업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며 "사고 전날 원청의 무리한 공기 단축 요구로 현장 경험이 없는 크레인업체 사장이 안전교육도 받지 않고 작업에 나섰고, 현장에 원·하청의 책임자나 관리감독자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또 "해당 업체는 지역에서 저단가 수주로 유명하며 임금 체불과 4대 보험 미납 등이 상시로 일어난다"며 "무리한 속도전과 안전을 도외시한 원·하청 사업주들을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판결을 접한 건설업 관계자들은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면서 '갑질 아닌 갑질'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전문건설협회 대구광역시회 관계자는 "전문건설업체는 도급받는 처지인데 최저가 수주로 인해 업체끼리 출혈경쟁이 계속 발생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윤을 조금이라도 남기려면 작업 현장의 안전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큰 업체는 입찰을 맡길 때 금액 하한선을 정해 적정 업체를 선정한다"며 "이런 내부 규정이 지역 건설 현장에도 적용이 된다면 안전사고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전문건설업체 사장은 "시공사는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PQ(입찰 참가자격 사전심사)점수가 낮아져 입찰 제한을 받는 것을 두려워해 사고 발생 시 하도급 업체에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판결에도 그런 부분이 반영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공사에서 안전관리비를 줄이는 것을 이윤으로 생각해 측정금액을 너무 낮게 잡아 보니 개인보호구를 구입하면 남는 게 없다"며 "안전시설 설치나 관리자 선임에 드는 비용은 전문업체가 떠맡는 상황에서 현장 안전은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법정 구속 판결이 나온 후 바로 항소 접수를 했다"며 "판결문에 누락된 내용과 판결 사유에 보강할 수 있는 부분은 추가해서 항소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