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기엔 대구가 예술의 중심지…자랑할 만한 지역사 탄탄해
「이곳은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 열린 수장고입니다. 작은 규모지만, 예술박물관 혹은 예술아카이브관의 모델하우스라고 볼 수 있는 공간인데요.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 구축 과정에서 수집된 자료들을 수장고에서 꺼내서 주제별로 선별해 조금씩 선보이는 샘플 전시장이기도 합니다.
맨 먼저 '예술가의 방'을 둘러보시죠. 이곳은 현재 '음악인의 방'으로 꾸며져 있고, 6·25전쟁 전후 대구에서 음악 운동을 펼친 음악가들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유네스코 음악 창의도시 대구의 기반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대구가 낳은 문화인물이라 하면 우리는 '시인 이상화' '소설가 현진건' '작곡가 박태준' '화가 이인성' 등을 쉽게 떠올립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해방 이후, 대구에 없었습니다. 이상화와 현진건, 이인성은 세상을 떠났고, 박태준과 현제명은 대구를 떠났습니다. 그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우고 문화예술계가 풍성해지도록 애쓴 분들을 열린 수장고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 열린 수장고를 지면을 통해 간략하게나마 안내해드렸다. 열린 수장고를 둘러본 관람객들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익히 들어본 예술인들 외에 이렇게 많은 예술인들이 활동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배운 지역사는 거의 없으며 그나마 극히 일부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잘 알려진 대구 출신 작곡가 박태준과 현제명이 해방 이후 서울에서 활동하지 않았다면 교과서에 실릴 수 있었을까. 그들의 뒤를 이은 1.5세대 예술인들은 활약이 컸음에도 왜 일반인들에게 덜 알려졌을까. 왜 교과서에는 서울 중심으로 활동한 예술가들이 주로 수록되어 있을까.
지역 문화예술사를 정리하다 보면 수시로 이런 의문이 들게 된다. 신문방송과 인터넷 매체가 다양해지고 지역 간 이동 시간이 더 빨라졌음에도 지역이 소외되고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오히려 근대기에는 대구와 같은 지역이 요즘 같은 서울 외 지역, 즉 지방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시인 이상화와 윤복진, 화가 이인성은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전국구 예술인이었다. 남북 분단 전이었으니 활동 반경도 넓었다. 그들이 남긴 예술자료를 통해 살펴보면 그들은 작품 구상을 위해 금강산을 자주 다녔고, 개성, 평양, 서울, 대구를 쉽게 오갔다. 예술가들도 서울에서만 모이지 않았다. 오히려 대구가 예술의 중심지였다. 그 힘은 국란 시기에도 증명됐다. 입증할 수 있는 자료들도 많이 남아 있다.
1936년 창간한 국내 최초의 음악평론지 『음악평론』 창간호를 살펴보면 김관, 홍종인, 윤복진(필명 김수향), 서항석의 글이 고루 실려 있다. 『음악평론』 발행 기념으로 음악평론가 김관과 윤복진 등이 대구 근교에서 찍은 사진이 윤복진의 앨범 속에 남아 있다. 화가 이인성이 운영하던 대구의 아루스 다방에는 시인 백석과 무용가 조택원 등이 드나들었다.
1932년 작곡가 박태준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일본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와 문학평론가 안막 그리고 윤복진이 모여서 환송연을 열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일본과 한국, 서울과 대구 간의 거리가 지금처럼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6.25전쟁기 피란예술인들이 대구에 모여 국내 최초의 예술학원을 설립했을 때, 해방 전 작고한 대구 출신 상화(尙火) 이상화 시인과 고월(古月) 이장희 시인의 아호 머리글자를 따서 '상고'예술학원이라 이름 지었다. 당시 설립 취지문을 살펴보면 '신문예 초창기의 거벽이었던 상화와 고월의 정신을 기려, 그 아호를 따, 유업을 추모'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피란예술인들이 부산이 아닌, 대구를 선택하게 한 것도 상화와 고월 같은 근대기 예술인이 닦아놓은 넉넉한 터와 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피란 예술인들이 떠나간 대구에서 격동기를 거치며 오늘날의 문화예술을 일군 1.5세대 예술인들은 근대기 예술인들이 뿌려놓은 씨앗을 훌륭하게 길러낸 분들이다. 지휘자 이기홍, 성악가 이점희, 작곡가 하대응과 김진균, 피아니스트 이경희, 추상회화의 선구자 극재 정점식, 남성 1세대 현대무용가 김상규…. 이들이 선택한 대구는 중앙에서 소외된 지방이 아닌, 문화예술하기 좋은 도시, 뜻을 같이하는 예술친구들이 많은 도시였다.
우리 지역의 예술사는 크게 자랑할 만큼 충분히 탄탄하다. 이제는 더 이상 우리 지역을 지킨 예술가들이 대구에서 활동해서 주목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지역의 청년들이 서울만 바라보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동안, 서울 중심으로 정리되고 있는 '보편사'에 대항하는 방법은 바로 우리 '지역사'를 잘 보존해서 빛내는 방법뿐이다.
임언미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팀장, 대구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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