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날씨 통제사

입력 2022-12-29 12:59:43 수정 2022-12-31 07:33:14

최정화 지음/ 창비에듀 펴냄

지난 14일 동대구역 광장 기후시계가 지구 온도 1.5℃ 상승까지 남은 시간을
지난 14일 동대구역 광장 기후시계가 지구 온도 1.5℃ 상승까지 남은 시간을 '6년 220일'로 표시하고 있다. 매일신문DB
최정화 지음/창비에듀 펴냄
최정화 지음/창비에듀 펴냄

'6년 220일'.

대구 동대구역 광장 앞에는 기후시계가 있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전 세계가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남은 양을 시간으로 변환해 시계로 표현했다. 한 달에 두 세 번, 동대구역 광장을 지나질 때마다 시계 속 남은 시간은 무섭게 줄어든다.

빠른 감소 속도에 간혹 온몸이 섬찟해지기도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광장을 벗어나는 순간 눈앞으로 다가온 '기후 위기'의 공포는 슬며시 휘발된다. 사소하게 여긴 일들이 거대한 재앙의 전조일텐데,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현실이 없으니 우리는 알지 못하는 셈이다.

해마다 전 세계에 기후 이슈가 차지하는 영역이 늘어나면서 환경 문제를 다룬 책도 쏟아진다. 환경 파괴에 따른 대가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작가도 있는 반면 혹자는 허구의 이야기로 망가진 지구의 미래를 독자들의 삶 속에 깊숙히 흩뿌린다.

지난 2012년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의 시작으로 2016년 젊은작가상까지 거머쥔 최정화 작가는 소설가로 데뷔한 후에도 기후 위기와 관련해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고 있다.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제로 웨이스트' 실천기를 담은 책을 펴내거나 여럿 환경 캠페인에 참여한다. 이번에 펴낸 '날씨 통제사'도 기후 위기와 인류의 미래를 SF 미스터리라는 장르로 엮어냈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환경 소재를 신선하고 재미있게 푼 셈이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다시 보게 만든다. 최 작가 이야기의 힘이다. 무탈해 보이는 세상에 스며든 허점들을 상상력을 더해 날카롭게 포착했다. 인간의 생활을 돕는 일회용 로봇들이 살인을 저질러 인간을 섬에 유기하고, 사람을 대신해 살아가는 이야기의 '그레이트 퍼시픽 데드 바디 패치', 엉망이 된 기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날씨 통제사'의 최후를 다룬 '벙커 없는 자들', 인류가 파멸한 이후 비인간 종족이 인간을 개조해 지구를 지배한다는 '비지터' 등 책에 담긴 여덟 가지의 기묘한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만 가슴이 뜨끔해진다.

소실집의 제목 '날씨 통제사'는 두 번째로 실린 단편 '벙커가 없는 자들' 속 인물들의 직업이다. 이야기 속 인류는 기후 위협을 느끼고 결국 날씨를 직접 조절하는 지경에 이른다.

'날씨가 센터의 통제권을 슬슬 벗어나기 시작한 건 벌써 십 년 전의 일이었다. 모두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삶 전체를 바꿔야 한다는 데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건 우리 인간들이다.'

날씨 통제사의 이야기에 빠지면 동대구역 광장의 기후 시계를 섬찟해하면서도 무심코 지나쳤던 모습이 떠오른다. 작가는 기후 변화를 사소한 농담처럼 말하는 인류의 오만함을 슬쩍 꼬집어 버리는데, 허구의 이야기 속 인물의 행위와 생각이 현실 속 우리의 행위와 생각과 똑닮아있어 아프다. 소설 속 이야기의 흐름을 상상하며 따라가다보면 머릿 속에는 환경을 중요시하지 않았던 일상의 장면들이 자연스레 펼쳐진다.

이토록 몰입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은 작가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써야 하는 이야기'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다. 그가 말하는 써야 하는 이야기는 자연과 생태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 편의 환경 단편 이야기 후에는 베트남 이주 노동자 이야기를 다룬 '쑤안의 블라우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담은 '고양이 눈', 성소수자 이야기인 '라디오를 좋아해' 등이 나오는데, 작가는 자연의 문제에서 시작해 우리 사회에 분명 존재하지만 외면당하기 일쑤인 이들의 이야기로 외연을 넓힌다.

"소설이야말로 현실에 뛰어드는 가장 적극적인 통로다. 써야 하는 이야기를 잘 써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

환경과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 자칫 이질적이게 보이는 두 가지 주제를 엮으면서 내고자 했던 작가의 목소리는 결국 하나였다. '자연과 인간을 배척하고 혐오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 251쪽, 1만5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