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일 경북대 행정대학원장(한국정부학회장)
눈에 띄는 기사가 두 개 있다.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260조 원을 썼다." 이 기사는 사람들이 출산을 거부하는 현 상황을 잘 보여준다. 다른 기사는 빈부 격차에 관한 것이다. "자산 상위 20% 가구의 평균 자산이 16.5억 원으로 하위 20% 가구 평균 자산의 64배이다." 사람들이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면 빈부 격차는 저출산의 원인이 된다.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출산을 조절한다. 임금이 낮아서 출산이 줄면 노동력이 부족해져서 임금이 오른다. 임금이 오르면 출산이 증가한다. 저출산 문제는 임금이 올라야 해결되지만 기업이 높은 임금을 원치 않는다.
기업은 저소득 국가에 진출해서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한다. 기업은 저임금 노동자를 찾아 땅끝까지 간다. 여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외국 정부는 우리 정부만큼 우호적이지 않다. 사회주의 정부는 언제든지 기업을 몰수할 수 있다. 다른 나라에 진출하는 데 따르는 비용도 상당하다. 기업이 이러한 위험과 비용을 감수하고 성공적으로 저소득 국가에 진출해도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 저소득 국가도 성장하기 마련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모든 가격이 오른다. 임금도 오른다. 임금이 오르면 기업은 떠나야 한다.
중국, 미국에 이어 베트남이 우리나라 3대 교역국이 됐다. 올해 세 분기(分期) 동안 우리 기업이 베트남에 5조 원을 투자했다. 베트남과의 교역에서 326억 달러 흑자를 냈지만 그 내용을 잘 봐야 한다. 베트남 수출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 만든 중간재였다. 우리 기업은 베트남에 공장을 짓고 현지 노동자를 고용해서 중간재를 조립한다. 중국의 물가와 임금이 올라감에 따라 베트남이 새로운 생산기지로 떠올랐다. 조만간 베트남이 미국을 제치고 우리나라 2대 교역국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베트남에서 떠나야 한다. 베트남이 영원히 저소득 국가에 머무르지 않는다. 응우옌 쑤언 푹 주석은 2040년 베트남이 고소득 국가가 될 것이라 선언했다.
기업이 저임금 노동자를 충원하는 다른 방법은 이민을 확대하는 것이다. 요즘 들어 이민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법무부가 이민청을 신설해서 이민을 확대하고, 국내 체류 외국인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움직임의 바탕에는 경제가 계속 성장하려면 이민을 확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심지어 이민을 확대해야 물가를 잡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민을 확대하면 기업이 부담하지 않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중화된 노동시장이 삼중화(三重化)된다. 영주권, 투표권, 이민 2세대 교육, 종교 다양성도 난제(難題)이다.
인종의 용광로로 불리는 미국에서도 이민은 논쟁적인 주제이다. 지난 50년 동안 미국 저임금 노동자들은 좋은 일자리를 잃었고 실질임금이 하락했다. 백인 중하층 계급의 삶이 황폐해졌다. 이들 중 다수는 우울증에 빠져서 술과 마약에 중독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디튼(Deaton)은 이를 '절망으로 인한 죽음'(Death of Despair)이라고 했다. 미국 저임금 노동자는 개발도상국 저임금 노동자, 이민 온 저임금 노동자, 로봇과 경쟁해야 했다. 저임금 노동자가 유입되면 기업 이윤이 증가해서 '장기적으로' 투자와 일자리가 증가한다는 반론도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케인즈(Keynes)가 말했듯이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
초등학교 입학 나이를 만 6세에서 5세로 낮추는 정책이 논란이 됐다. 이 정책의 목적 중 하나는 취업 시기를 1년 앞당기는 것이다. 아이들을 일찍 입학시키면 일찍 졸업하니 노동 공급이 증가한다.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에게 1년 더 일하는 것은 축복이다. 그러나 저임금 노동자에게는 1년 더 일하는 것이 고통이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노동 공급 측면에서 접근한다. 노동력이 부족하니 출산을 늘리거나, 이민을 확대하거나, 아이들을 일찍 입학시켜서 노동 공급을 늘리자는 발상(發想)이다. 이 접근은 틀렸다. 사람들이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 정부는 이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국민은 노동자이기 전에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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