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불타는 트롯맨 vs 미스터트롯2, 돌아온 트로트의 계절

입력 2022-12-28 11:40:58 수정 2022-12-29 17:33:38

MBN ‘불타는 트롯맨’과 TV조선 ‘미스터트롯2’의 대결 혹은 상생

불타는 트롯맨 로고. MBN 공식홈페이지 캡처.
불타는 트롯맨 로고. MBN 공식홈페이지 캡처.
미스터트롯2 로고. TV조선 공식홈페이지 캡처.
미스터트롯2 로고. TV조선 공식홈페이지 캡처.

트로트의 계절이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방송사 간의 대결구도가 생겼다. TV조선 '미스터트롯2'에 MBN '불타는 트롯맨'이 도전장을 내민 것. 첫 회 시청률 결과는 '미스터트롯2'의 압승이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고 향후 이 대결 양상은 어떻게 흘러갈까.

◆오징어게임처럼 독하게 '트롯맨'

먼저 포문을 연 건 MBN 불타는 트롯맨이다. 사실 방송가에는 이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부터 우려 섞인 목소리들이 나왔다.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트로트 예능의 신기원을 만들었던 서혜진 전 TV조선 본부장이 퇴사해 차린 크레아스튜디오에서 내놓은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서혜진 PD는 자신이 만들었던 TV조선표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됐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건 그다지 긍정적이지만은 않아서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형식이 같아 출연자와 심사위원진이 겹쳐질 수밖에 없고, 불타는 트롯맨과 비슷한 시기에 방영되는 미스터트롯2는 이들을 섭외하기 위한 전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진행자로 서는가에서부터 심사위원으로 물망에 오른 이들도 두 프로그램 사이에서 눈치를 보게 됐고, 출연자들은 더더욱 그랬다. 어느 쪽에 출연하는가에 따라 반대쪽 방송사와는 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도가 됐다. 또 프로그램의 성패까지 좌우하는 사전 섭외에 있어서도 파이를 나눠 갖게 됨으로써 혹여나 두 프로그램이 모두 힘이 빠지게 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고, 이미 TV조선과 MBN이 트로트 오디션 포맷을 두고 벌어진 표절 소송은, 두 프로그램의 경쟁과 함께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도 높았다.

먼저 지난 20일 밤에 시작한 불타는 트롯맨은 서혜진 PD가 TV조선을 떠나 스튜디오에서 첫 선을 보이는 도전인 만큼 독한 면모들이 묻어났다. 비슷한 형식을 의식해서인지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연상케 하는 오프닝과 '머니볼'로 돈 잔치의 분위기를 한껏 돋웠다. 상금을 정해놓고 하는 게 아니라, 기본 상금 3억원으로 시작해 매번 출연자들이 몇 개의 불을 받느냐에 따라 적립금이 올라가는 이른바 '오픈 상금제'를 도입한 것. 이로써 출연자의 무대가 거둔 불의 숫자를 합해 천정에 매달린 머니볼에 돈다발이 떨어지는 광경이 연출됐다. 이를 보며 환호를 올리는 방청객과 마스터들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미스터트롯2와 출연자를 나눠 갖게 됐지만, 그래도 훈훈한 외모와 출중한 실력, 끼를 갖춘 출연자들이 첫 방부터 무대를 활활 뜨겁게 만들었다. 공훈, 김중연, 홍성원, 안율, 박민수, 황영웅 같은 가능성이 돋보이는 출연자들은 물론이고, 이미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팝페라가수 신명근, 국악인 조주한, 뮤지컬배우 에녹의 무대는 관객과 시청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머니볼 같은 독한 설정을 내세웠지만, 그건 일종의 차별화이고 실체로는 실력자들을 끌어모으려 안간힘을 썼다는 걸 실감할 수 있는 첫 방송이었다. 그래서일까. 첫 방 시청률은 8.3%(닐슨 코리아)로 MBN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 수치는 TV조선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이 시즌1에서 첫 방송에 냈던 수치보다 높은 것이었다(각각 5.8%, 8.1%). 이제 첫 시즌을 연 불타는 트롯맨으로서는 고무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MBN
MBN '불타는 트롯맨' 중 한 장면. 공식 홈페이지 캡처

◆단번에 20% 넘겨버린 '미스터트롯2'

22일 밤, TV조선 미스터트롯2의 반격이 시작됐다. 과연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만든 서혜진 PD와 노윤 작가가 빠졌어도 건재한 힘을 낼 수 있을까 의구심을 만들었지만 미스터트롯2는 이것이 그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첫 회 시청률로 증명했다. 20.2%. 불타는 트롯맨과 비교해 두 배가 넘는 시청률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편성되어 경쟁을 벌이게 됐지만, 미스터트롯2가 가진 브랜드와 TV조선이라는 방송사에 대한 트로트팬들의 충성도는 압도적인 시청률의 주요 원인이 됐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고 어찌 보면 20.2%도 높은 수치라고 보긴 어렵다. 그건 미스터트롯이 신드롬급 성공을 거둔 후 '트로트 오디션=TV조선'이라는 등식의 브랜드가 생겼고, 그래서 미스트롯2가 첫 회부터 28.6%라는 놀라운 시청률을 냈던 걸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스트롯2는 결국 32.8%의 최고 시청률로 마무리되었지만 미스터트롯에 비해 그다지 성공한 프로그램으로 지목되진 못했다.

실제로 미스트롯2가 배출한 우승자 양지은은 그간 미스트롯의 송가인, 미스터트롯의 임영웅, 영탁, 김호중, 김희재, 이찬원, 장민호, 정동원 같은 트로트 스타들과 비교해 그 후의 존재감이 두드러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스트롯2가 높은 시청률을 낸 건 트로트 오디션 원조라는 브랜드 효과가 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스터트롯2의 첫 회 시청률은 불타는 트롯맨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앞서 있지만 자체 브랜드의 힘을 생각해보면 결코 높다고만 말하긴 어려운 수치다.

실제로 시청률과 상관없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극적 구성이나 만듦새만을 놓고 보면 확실히 서혜진 PD와 노윤 작가가 함께 한 불타는 트롯맨이 훨씬 매끈한 느낌이다. 첫 회부터 방청석을 채워 응원하는 출연자가 떨어졌을 때 마스터들에게 항의의 눈빛을 날리는 객석 리액션만으로 열광적인 팬덤의 분위기를 연출한 점은 단적인 사례다.

미스터트롯2는 이에 비교하면 다소 차분한(?) 분위기였다. 원조집이 갖는 무게감은 분명했지만, 방송으로서의 극적 재미는 다소 떨어진 것. 다만 브랜드의 힘이 워낙 크다는 걸 느끼게 되는 건 거의 '반칙(?)'에 가까운 출연진 구성이다. 최수호, 강태풍, 박지현, 장송호, 윤준협, 박성온, 고강민, 용호 같은 기대감을 만드는 신예들에, 데뷔 7년차 최우진, '골든마이크' 우승자 송민준, 장구의 신 박서진, '트롯전국체전' 우승자 진해성까지 더해진 것이다.

TV조선
TV조선 '미스터트롯2'의 한 장면. 공식 홈페이지 캡처

◆'경쟁보다는 상생' 트로트 대전

그렇다면 불타는 트롯맨과 미스터트롯2의 대결은 어떤 양상으로 흘러가게 될까. 물론 두 프로그램은 시작 전까지만 해도 출연자와 심사위원진을 구성하는 섭외 전쟁이 벌어지며 이것이 결국 두 프로그램이 파이를 나눔으로써 집중도를 떨어뜨릴 거라는 우려를 낳았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장윤정이 미스터트롯2의 마스터로 참여하고, 그 남편인 도경완이 불타는 트롯맨의 메인 MC로 서게 되는 풍경이 만들어졌고, 한 때는 TV조선 트로트 오디션에서 한솥밥을 먹던 남진, 설운도, 윤일상, 윤명선 같은 심사위원진들이 불타는 트롯맨으로 옮겨갔다. 심사위원진들이 나뉘는 이 광경은 섭외된 출연자들 역시 얼마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두 프로그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가를 가늠하게 해주는 일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 두 프로그램이 벌이고 있는 트로트 대전은 경쟁으로 누가 누구를 밟고 올라가기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끌어주는 상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같은 요일에 편성되지 않아서 직접적인 대결이 펼쳐지는 게 아닌데다, 트로트라는 소재가 갖는 주 시청층이 두 프로그램을 모두 소비하는 것에 오히려 반색할 거라는 점 때문이다. 화요일에는 불타는 트롯맨을 보고 목요일에는 미스터트롯2를 보는 식으로.

또한 두 프로그램이 연달아 포진되어 있다는 점은 일종의 상승효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방송사들 사이에서는 치열한 경쟁이지만, 트로트를 좋아하는 시청자들에게는 '트로트의 계절'이 온 거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간만에 트로트 팬들은 일주일이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됐다.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