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친 지 열흘 만에 전투 현장으로 복귀…왜 다시 돌아온 건지 지금도 물어보고 싶구나"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모를 희상이에게 몇 자 적어본다.
자네를 처음 만난 때가 1967년이었지, 아마? 이제 나도 나이가 80이 다 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전라도에서 왔다는 너는 덩치도 꽤 좋았고 구렛나루가 어울릴 정도로 인물도 참 좋았지. 나랑 나이차이가 너댓 살 났던 거 같은데 분대장이었던 나를 어려워하지 않고 살갑게 대해서 좋았어. 나를 부를 때도 '분대장님'이라 안 부르고 '형님'이라 부르며 다가온 너를 아끼지 않을 수 없었지.
자네를 아직도 잊지 못하는 건 아마 전쟁 당시의 기억 한 토막 때문이라네. 전쟁 중 수색작전을 하던 때였지. 작전을 수행하던 중에 갑자기 적과의 교전이 벌어졌고 교전 후 빠져나오는데 네가 안 보이더구나. 분대장으로써 대원을 잃어버렸으니 큰일이다 싶었지.
다시 돌아오는 길을 되짚어 보니 네가 넘어져 있는 걸 발견했어. 자세히 보니 복사뼈에 총을 맞은 것 같더군. 걸을 수 없을 것 같아 너를 들쳐 업은 채 그 곳을 겨우 빠져나왔지. 불행 중 다행으로 총알은 복사뼈를 정통으로 맞은 게 아니라 스쳐 지나간 듯 보였고, 자네는 곧바로 후방의 야전병원으로 보내졌지.
사실, 그 때 나는 자네가 다시 전장으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대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은 후방에서 지원 임무를 맡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지. 게다가 나 또한 다친 너를 보고 전장에서 혹여 아끼는 부하이자 후임을 잃고 싶지 않아서 "만약 다 낫고 재배치를 받게 되면 후방으로 가서 이쪽으로는 돌아오지 말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지.
그런데 다친 지 열흘만에 돌아온 걸 보고 적잖이 놀랐어. 다쳤기 때문에 대개는 전투 현장으로 오는 경우가 잘 없는데 돌아온 걸 보고 어찌 된 일인가 싶었네. 무리해서 돌아올 이유가 없었을텐데 왜 다시 돌아온건지 지금도 물어보고 싶구나. 난 네가 부대원들의 정이 그립고 '분대장'보다는 '형님'으로 대한 내가 의지가 많이 됐던 부분이 커서 다시 돌아올 결심을 한 게 아닐까라고 추측해보지만 말이지.
그렇게 전장을 함께 누비다 귀국을 했고, 서로 주소를 교환하며 잊지 말자고 약속했지. 몇 번 편지가 오고가다가 어느 순간 서로가 먹고살기 바빠서 그랬는지 연락이 뜸해지고 결국에는 연락이 끊기고야 말았다. 나이가 들고 나서 자네를 찾아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한 번은 자네가 아는 사람이 대구에서 경찰을 한대서 그 사람을 통해 찾아보려고 함께 찍은 사진도 주며 부탁했지만 결국 소식이 돌아오지 않았고 애꿎은 사진만 사라져버렸다. 그 때문에 자네와 함께한 사진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추억할 만한 뭔가가 사라진 것 같아 참 가슴아프다.
요즘에는 무공훈장을 보면서 무공수훈자회에 나가서 다른 전우들과 만나서 옛 얘기를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자네를 보고싶은 마음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을까. 그 훈장은 반세기가 지나도 아직까지 내곁에 있는데 어찌하여 그렇게도 보고싶은 전우는 단 한번도 코끝도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내 남은 여생이 그리 길지는 않을 것 같지만 죽는 날까지 기대를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하늘 나라에서라도 만나기를 가슴속에 깊이 깊이 새기고 살아가겠네. 나이는 자꾸 먹어가는데 살아서 너를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정말 많이 그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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