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입력 2022-12-22 16:37:50 수정 2022-12-22 18:32:50

유광준 서울취재본부 차장

유광준 서울취재본부 차장
유광준 서울취재본부 차장

이태원 참사로 158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의 명복과 부상자의 쾌유를 빈다.

정치권에선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이라도 고치겠다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시작했다. 자연스러운 수순이고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다만 국정조사가 국정을 마비시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닥친 경제위기 상황이 너무나 엄중하기 때문이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여야가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법정 처리 시한과 정기국회 회기를 넘기자 "정치하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한다"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향해 호통을 쳤다.

특히 김 의장은 "경제를 살려낼 수단으로 정치권이 갖고 있는 것이 재정 하나뿐인데 여태까지 제대로 합의를 안 하고 있으면 집행이 언제 되겠느냐"며 "취약계층을 위한 중앙정부 예산은 그 자체로 집행을 못 하고 지방정부 예산과 묶어야 한다. (지금) 가장 어려운 게 누구냐, 취약계층 아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와 한국은행도 어두운 경기 전망을 내놓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지난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2023년 경제정책방향 발표를 통해 "주요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 영향이 실물경제 어려움으로 본격 전이되는 가운데 대외 의존도 높은 우리 경제도 수출을 중심으로 하강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내년 상반기가 한국 경제의 경기 침체 경계선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이 총재는 지난 20일 물가안정 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행이 내년 경제성장률을 1.7%로 전망했는데 상반기에는 경기가 많이 어려울 것으로 예측한다"면서 "경기 침체로 가느냐, 아니냐는 보더라인(경계선)에 있다"고 강조했다.

중앙은행 총재가 '침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정도면 어지간한 위기는 아니라는 의미다.

현장의 목소리는 더욱 절박하다. 최근 만난 지역의 한 중견기업 대표는 '제조업'을 계속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며 가업을 이어줬으면 좋겠다는 말도 자녀들에게 못 하겠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심지어 내년 상반기 이른바 '죽음을 계곡'을 건널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중소기업도 부지기수다. 경북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한 기업인은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분과 유가족의 한을 푸는 일도 중요하지만 국회가 자금 경색 등으로 사지로 내몰리고 있는 중소기업에도 관심을 가져 달라"며 "이러다가는 내년 상반기에 중소기업 1천580개가 도산할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라고 입법부 차원의 각별한 도움을 요청했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정치는 존재 의미가 없다. 미국 민주당이 지난 1992년 중간선거에서 사용했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문장이 여전히 여의도에서 위력을 떨치고 있는 이유를 깊이 성찰할 일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나서야 한다. 힘자랑이 아니라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하다.

대통령을 비롯해 여권의 주요 정치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 위기 앞에선 여야가 따로 없다'고 강조하면서 야당의 국정 협조를 촉구한다.

하지만 대통령제에서 야당은 원래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오죽하면 야당의 영어 표현이 'The opposition party'(반대당)일까.

거대 야당이 보유한 의석을 가지고 실력 행사에 나선다고 해서 여권마저 권력 기관을 동원하면 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