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외 8명 지음/ 문학동네 펴냄
아시아의 젊은 작가들이 함께 쓴 소설집 '절연'이 출간됐다.
한국·일본·중국·대만·홍콩·티베트·베트남·태국·싱가포르에서 활동하는 작가 9명의 단편소설을 모은 작품집이다. 그간 한·중·일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소설집이 출간된 적은 있지만, 동남아시아 작가들까지 참여한 작품집 출간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 작가로 유명한 소설가 정세랑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지난 2020년 가을 일본 출판사 쇼가쿠칸으로부터 한국과 일본 작가들을 모아 한 권의 소설집을 내보자는 얘기를 들은 그는 "우정의 범위를 살짝 더 넓혀보고 싶다"며 아시아 여러 작가를 초대하자고 다시 제안했다.
이후 2년에 걸친 기획 끝에 아시아 9개국에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을 모은 소설집이 한국과 일본에 동시에 나오게 됐다. 참여 작가들은 모두 30, 40대로 각국에서 동시대 문학을 주도하는 이들이다. 아시아 문학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기획이라 부를 만하다.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9명의 작가의 작품을 각 언어를 전공한 일본 번역가 7명이 번역하고, 그것을 도쿄에 거주하는 홍은주 번역가가 다시 한글로 옮겼다. 편집 과정에서 의문점이 발견되면 일본의 편집자와 해당 언어의 번역자를 거쳐 저자에게 전달되고, 피드백이 되돌아오면 다시 홍 번역가와 문학동네 편집부가 논의하는 식이었다.
아시아 각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절연'이라는 공통된 키워드를 어떻게 해석해냈느냐를 살펴보는 것은 이 책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다. 의미의 해석도, 이를 풀어가는 방식도 다 제각각이다.
소설집의 시작은 일본 작가 무라타 사야카의 단편 '무'(無)가 연다. '편의점 인간'으로 일본 문학계 최고 권위의 양대 문학상 중 하나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무라타는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작가다. "딸애가 장래에 '무(無)'가 되고 싶대서, 난처하네요." 소설 속 '무 세대'는 현실과 절연하고자 하는 청년들이다. 타인과 자신을 구별할 수 없도록 특징없는 외모를 유지하고 과거의 기억부터 자신의 이름까지 잊은 채 살아가는 방식으로 현실과 유리된다.
소설집의 마지막에 실린 작품이자 표제작인 '절연'은 정세랑 작가가 썼다. 성추문에 휘말린 인물을 대하는 윤리관의 차이로 믿고 의지하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어내는 과정을 담았다. "의견이 다른 것쯤은 넘길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들 사이의 균열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다. 작가는 이런 갈등을 통해 우리 사회에 불거졌던 성폭력 고발 등을 대하는 세태를 꼬집는다.
자국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드러내는 작품도 여럿 있다. 공상과학(SF) 소설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휴고상을 2016년 받은 중국의 하오징팡은 부정적 감정을 지닌 시민이 구치소에 격리되는 단편 '긍정 벽돌'로 정부를 비판한다. 홍콩의 홍라이추는 단편 '비밀경찰'에서 당국의 감시로 사람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계를 묘사한다.
이외에도 싱가포르의 알피안 사아트, 태국의 위왓 럿위왓웡사, 티베트의 라샴자, 베트남의 응우옌 응옥 뚜, 대만의 롄밍웨이 등 작가들은 저마다의 시각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정세랑 작가는 '기획의 말'에서 "격변하는 세계에서 시시각각 가치판단을 내려야 하는 개개인들은, 끝없이 서로 헤어지고 있다"며 "어디까지가 건강한 갈등이고 어디부터가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의 시작인지 사람마다 안쪽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책의 말미에는 정세랑과 무라타 사야카가 서울에서 만나 수록작에 대해 나눈 대담이 실려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412쪽,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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