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사건이다.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하는 역사 인식은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우리는 1950년 한국 전쟁에 대해 완전히 다른 세 가지 기억을 알고 있다.
첫째는 정당화 담론이다. 이 담론은 전쟁이 미 제국주의 세력에 의한 북침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하며 북한의 전쟁 행위를 정당화한다. 둘째는 기획 담론이다. 이 담론은 사실은 남침이지만 역사의식에 입각해 사실을 재해석하면 남침은 미국이 유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셋째는 저항 담론이다. 이 담론은 전쟁이 남침에 의한 기습공격이었고 남한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필사적인 저항으로 나라를 지켰다고 말한다.
기억과 사실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세 번째는 가장 사실에 가까운 기억이지만 사회적으로 우세한 기억(도미넌트 메모리)은 전혀 아니다. 어쩌면 가장 사회적으로 무력하고 무의미한 기억인지도 모른다.
한국에는 1980년대부터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면서 민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민족의 정통성을 북한에 두는 이 사람들의 세력은 점점 커져 언론과 교육과 문화를 좌우하게 되었다. 급기야 지난 대선의 유력 후보는 2021년 7월 대한민국을 '친일 부역자들과 미 점령군이 합작해서 만든 나라'라고 정의하기에 이르렀다.
가해자를 두둔하고 가해자를 정당화하는 기억의 횡포로부터 어떻게 국가 정체성을 지킬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지금 대구 경북 사람들이 겪은 구체적이고 힘 있는 실증의 기억을 확산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개전 초기 인민군에게 한국 전쟁은 소풍 같았다. 인민군은 압도적인 우위의 전투력으로 기습공격을 감행했고 인민군 장교들은 중공군 출신의 노련한 전투경험자가 많았다. 그들은 한 연대가 정면을 공격하는 사이 다른 연대가 측후방으로 돌아가 협공하는, 아주 단순한 일점양면전술로 이기고 또 이겼다.
상당수의 인민군 사단이 서울에서 용인까지, 음성과 괴산을 거쳐 상주까지 글자 그대로 파죽지세로 남하했다. 병력과 장비의 손실이 거의 없이 낙동강에 이른 것이다.
8월초 국군 1사단이 칠곡의 왜관 다부동에서 최후의 방어선을 쳤을 때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의 8퍼센트에 불과했다. 그 국군 1사단을 인민군 3사단, 13사단, 15사단, 3배가 넘는 병력의 인민군이 공격해왔다. 인민군의 승리는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 김일성은 수안보까지 내려와 8월 15일 부산을 점령한 뒤 축하 퍼레이드를 거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서 반전이 일어났다. 그전까지 보이지 않던, 강하고 진실하며 영광스러운 대한민국이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8퍼센트밖에 남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특히 대구와 경주와 포항 지역에서 무수한 청년들이 나타나 참전했다.
이 자유의 아들들은 조국이 멸망의 위기에 이르러 모두의 사기가 땅에 졌을 때, 고향의 대지에서 더 큰 힘을 얻어 솟아나는 신화의 용사 같았다. 그들은 잘 살거나 가난하거나, 잘났거나 못났거나를 따지지 않고 항복과 타협 없이 나라를 지키는 전쟁에 뛰어들었다.
어디선가 제1유격대대라는 군복도 제각각인 부대가 나타났다. 국군 25연대는 전멸시켰는데 바로 재건되었다. 26연대라는 부대가 새로 편성되어 출현했다. 18연대는 병사들이 머리카락과 손톱과 유서를 써서 사령부에 맡기고 인민군 후방으로 침투했다. 인민군은 포위하려고 하면 포위되었다. 55일 후 낙동강까지 내려온 인민군들은 궤멸되었다.
이 시기 국군에는 모병 부대에 의한 강제징집이 있었다. 후퇴하는 중대장을 연대장이 쏘아 죽이고, 후퇴하는 아군을 흰 완장을 찬 아군이 쏘아 죽이는 독전대의 비극도 있었다. 미군의 대포와 함포와 공중 폭격의 맹폭으로 간신히 전선을 유지하는 암담함도 있었다.
그러나 포항을 지키기 위해 탄환이 다 떨어질 때까지 싸우다가 전사한 군번 없는 학도병 1천 394명이 있었다. 다부동 고지를 뺏기고 또 뺏으면서 죽어간 2,300여 명의 1사단 장병들이 있었다. 포격에 운전병은 즉사하고 자신은 부상을 입었는데 '팔 하나 없어져도 전쟁은 할 수 있다'며 뛰쳐나간 백선엽 사단장 같은 장교들이 있었다.
대한민국은 물질적인 형태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8 퍼센트의 청년들이 죽어 흘린 피의 기억으로도 존재한다. 이 피의 기억이 살아 있어야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이 재생산될 수 있다.
불행하게 대한민국은 지금 이 8퍼센트의 기억을 지우려는 전쟁을 경험하고 있다. 기억의 전쟁에서 백선엽은 나라를 구한 명장이 아니라 국립묘지에 묻힐 자격조차 없는 친일파가 된다. 낙동강과 다부동에서 죽어간 청년들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가련한 희생자가 된다. 끊임없이 북한을 정당화하는 감상적인 민족주의는 특정 기억만을 선택하고 8퍼센트의 기억은 배제한다.
올해 정부조직법이 개정되어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승격된다고 한다. 보훈은 한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고도로 상징적인 국가 기능이다. 보훈은 애국자들에 대한 명예 선양을 통해 국가의 핵심적인 정체성을 구성하고 국민통합의 구심점을 만든다.
그러나 이제까지 한국의 보훈 문화는 한심했다. 60여 년 보훈 정책이 시행되었으나 보훈 가족의 만족도는 낮았고 일반 국민의 관심도, 제대로 된 참여도 거의 없었다.
오늘날의 치열한 기억 전쟁에서 필요한 것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설득력을 갖는 콘텐츠이다. 그 콘텐츠는 무엇보다 대구 경북의 경험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친일 부역자의 나라였다는 허구의 거대 서사는 8퍼센트의 기억이 가진 진실의 힘 앞에 무너질 것이다.
이인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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