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過而不改의 여의도 정치

입력 2022-12-13 17:20:41 수정 2022-12-13 18:22:12

송신용 서울지사장

교수신문이 2001년부터 선정해 온 올해의 사자성어만큼 밀레니엄 이후 한국 사회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 참여정부 때인 2004년 당동벌이(黨同伐異·같은 무리와는 당을 만들고 다른 자는 공격한다)는 보수와 진보로 짝 갈라진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을 반영했다. 2008년 호질기의(護疾忌醫·문제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꺼려 듣지 않다), 2013년 도행역시(倒行逆施·잘못된 길을 고집하거나 시대착오적으로 나쁜 일을 꾀하다)라고 다르지 않다.

올해는 '과이불개'(過而不改)가 뽑혔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전국 대학교수 설문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2년 전 아시타비(我是他非·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의 새 버전 격이다. 자신의 잘못에는 눈감은 채 상대를 비난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한자로 옮긴 듯한 인상이다. 국민은 코로나19, 경제난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데 아집에 사로잡혀 극단적 정쟁과 대결을 일삼는 여의도 정치를 겨냥한 네 글자다. 여권은 이전 정부 탓하기 바쁘고, 야권은 야당 탄압을 입에 달고 살며 반성이라고는 없는 여의도 정치의 번지수를 제대로 짚었다.

정치권의 과이불개 사례는 나열하기 숨차다. 국민의힘이 집단 퇴장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시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그중 하나다. 앞서 이태원 참사 책임을 놓고 이 장관 거취와 국정조사 문제로 맞붙었다가 가까스로 '선(先)예산안 통과, 후(後)국정조사'를 합의했던 여야다. 그런데도 야당은 이 장관 해임 건의를 밀어붙였고, 여당은 방어막을 치는 데만 당력을 집중해 무기력하다는 비판을 샀다.

김진표 국회의장(왼쪽부터),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13일 오후 내년도 예산안 협상을 위해 의장실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국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예산안 통과 법정시한(12월 2일)을 넘긴 데 이어 정기국회 회기(12월 9일)마저 지키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2014년 국회 선진화법 시행 이후 초유의 사태다. 가뜩이나 국회는 지난 8일 여야 합의로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한전법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돼 전기료 폭등을 예고한 상황이다. 특히 예산안 처리가 불투명해지면서 내년 나라 살림과 민생에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여야는 미증유의 현실에서도 '내로남불' '나 몰라라' 하며 사생결단식으로 맞서는 중이다. 13일에는 여야가 "놀부 야당"-"골목대장 尹"이라는 험담을 주고받았다.

사실 과이불개의 방점은 그 뒤를 따르는 시위과의(是謂過矣)에 찍혀 있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짜 잘못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이 사자성어가 처음 등장하는 논어 '위령공편'에서 제자인 안회를 일컬어 잘못을 두 번 되풀이하지 않았다고 했다. 잘못했더라도 고치면 잘못이 아니라는 의미다.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는 "과이불개는 잘못 그 자체를 지적하는 것 이상으로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치는 시위과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혹시나가 역시나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여야 강 대 강 대치의 최대 쟁점인 법인세 감세를 놓고 민주당이 자당 출신 김진표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한자 4자에 한국의 1년을 짚어온 지 올해로 23년, 백성이 편안히 지낸다는 태평성대(太平聖代) 같은 사자성어는 그동안 그림의 떡이었다. 이러다가는 붕정만리(鵬程萬里·붕새의 노정이 만 리라는 것으로 앞날이 밝고 창창함)처럼 국민에게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어줄 글귀가 어느 세월에 뽑힐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