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딸로 자라, 억척 같은 엄마로 살며, 사랑받는 아내가 되고팠던 우리 할매…"
"할아버지 돌아가셨어요."
한결같던 평온한 얼굴에 엄청난 고통의 일그러짐이 덮쳤다. 소리도 눈물도 없이 가슴을 울리며 온몸으로 우셨다. 내 외할매의 의식은 한평생 애증한 남편의 죽음을 그렇게 잠시 애도하고 다시 고요의 바다로 가라앉았다.
잔치 날, 신랑이 입장하는데 인물이 어찌나 좋던지 '은쟁반에 옥구슬을 올려놓은 듯' 해서 이웃들이 감탄했다고 한다. 같은 이야기를 하도 들어서, 외할매 결혼식날 신랑 입장을 직접 본 듯하다. 아름다운 남편은 유복자로 태어나 배를 곯아가며 공부해 은행원이 됐고, 당시 마을 유지였던, 외할매의 아버지에게 발탁되어 장가를 들었다. 외할아버지는 부모 복이 없는 것인지 재산을 약속한 장인이, 장가온 지 1년 만에 돌아가셨다.
금 노리개 차고 놀던 셋째 딸, 우리 외할매는 시댁에 쌀이 없어 보리밥을 먹는데 그 밥이 그렇게 맛있었다고 했다. 할매의 고된 일상은 옥구슬 신랑과 함께 시작되었던 듯하다. 아이 다섯을 건사하기 위해 외할매는 늘 일했다. 손녀인 내가 아는 것만도 하숙, 새 장사, 판 장사, 오락실…. 연탄 아궁이가 있던 공간에 새장이 가득했는데, 나무로 만든 새 집 안에서 새를 잡아먹은 쥐가 튀어 나와 나도 할매도 아연실색하여 뛰어 나왔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방에는 밥상이 천정에 닿도록 들어왔다.
할매는 내 남동생이 태어나자 아침에 나를 데려갔다가 저녁에 데려다 놓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난 초등학교를 다니던 내내 주말만 되면 외가에 갔다. 토요일에 학교를 마치고 외할매가 있는 집에 가는 길이 그렇게 좋았다. 막상 외가에 도착하면 종일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시는 할아버지께 어색하게 인사하고, 쿰쿰한 된장찌개, 씁쓸한 수루매(오징어) 반찬에 물 말아 밥을 먹었다. 저녁에 막내 이모가 직장 마치고 들어온다고 전화 하면 등골 서늘하게 컴컴한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 갔다. 일요일 아침이 되면 할매는 새벽같이 일어나 다시 된장을 끓이고 이모들은 두꺼운 이불을 머리까지 쓰고 발은 내어놓고 늦잠을 잔다.
중학교 3학년 때 우리 가족은 미국에 1년 있었다. 떠나던 날 외할매, 이모들, 외삼촌 모두 공항에 나와 다 같이 울었다. 가끔씩 국제통화를 했는데 외할매가 "머스마가 책가방 메고 춤 추는데 억수로 귀엽다. 너거도 꼭 봐라"해서 누군가 했더니 서태지였다. 배구선수 이름도 다 외며 박진감 넘치는 중계도 해주셨는데 나는 배구를 몰라 건성으로 "어…어…" 하며 들었다.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할매에게 연락을 자주 못했다. 꼿꼿하던 외할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고 수 년을 외할매가 병간호를 했다. 할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해지시고부터 할매를 자꾸 지팡이로 때리고 힘들게 했다. 할매는 영감이 죽으면 하고 싶은 일들을 늘어놓으면서도 간간히 말버릇 같은 옥구슬 얘기도 잊지 않았다.
할매가 병이 났다. 임파선 암이라고 했다. 한 평생 할아버지가 집에 잘 안 들어와서인지, 너무 고돼서 인지 할매는 젊을 때부터 피부병이 심했다. 습진이 심해 접히는 피부에 늘 두드러기가 있었고 머리 밑에서도 진물이 났다. 그럴 때마다 독한 약을 먹고 장기적으로 연고를 바르고 한 것이 원인일 수 있다고 했다. 임파선 암은 뇌를 타고 들어가 할매의 우리 할매다움을 없애버렸다. 할매는 점점 말이 없어지더니 언젠가부터는 누워만 계시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매도 따라가셨다. 가만히 자는 듯 누워있는 할매를 볼 때는 문득 일어나 옥구슬 얘기를 할 것 같았는데 막상 작은 숨을 몇 번 몰아쉬다 멈춰버렸을 때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제 내가 나와 함께 존재했던 할매의 나이를 지나가고 있다. 귀한 딸로 자라, 억척같은 엄마로 살며, 사랑받는 아내가 되고 팠던 우리 할매….
이 글을 쓰며 나는 또 다시 우리 할매를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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