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인생 흐름 따라가며 삶의 많은 것 배워…이젠 봉사 대장으로 살고 있어요"
아버지, 벌써 겨울입니다. 오랜만에 아들이 안부인사 전합니다. 그 곳에선 잘 계시지요?아마도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셨겠지만 얼마 전에 어머니와 형제들이 고령에 있는 어머니 댁에 함께 모여 김장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겨울이 몇 번을 지나가도 아버지의 빈 자리는 계속 눈에 밟힙니다.
올해 제 나이 쉰 일곱, 계산해 보니 아버지께서 살아계셨다면 아흔 일곱 살이겠더라고요. 어머니와 아버지의 나이차가 또 열 살 차이나니 올해 어머니 연세도 여든 일곱. 어쩌다보니 부모님과 제 나이의 끝자리가 같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게 느껴져 문득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아버지, 기억나시나요? 제가 어릴 때 천둥벌거숭이마냥 동네에서 놀다가 팔을 다쳤던 때가 있었지요. 그 때 아버지는 마을에서 약 8㎞ 떨어진 고령읍내의 병원까지 저를 데려가서 치료받게 하셨지요. 그 이후로도 팔이 다 나을 때까지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장날만 되면 그 먼 거리를 저를 업은 채 걸어서 병원에 데려가셨습니다. 그 때 마다 아버지의 등은 땀에 젖었고, 비가 올 때면 비에 젖었죠. 그 때 아버지의 등은 푸근했지만 철 없는 아들을 업고 그 먼 거리를 오간 모습을 떠올리면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제가 지금처럼 사업으로 자리잡고 '라이온스 클럽'이라는 봉사단체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건 어찌보면 아버지의 믿음 덕분이었습니다. 취직 준비한다고 서른 넘어서까지 공부하고 있던 저에게 아버지는 "너를 믿으니 계속 정진하라"며 용기와 믿음을 주셨죠. 사실, 아버지 칠순 때까지만 해도 변변한 직장이 없었던지라 아버지께 아들로써 뭘 해드리지도 못하는 이 상황이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남몰래 눈물짓기도 했었지요.
그 때 아버지의 믿음으로 힘든 시절을 버틸 용기를 얻었습니다. "성실함은 있으니 잘 되리라 믿는다"는 말씀이 제게는 너무 고마운 말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나중에 사업을 시작하고 형편이 나아지면서 아버지께 못다한 효도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게 됐던 것 같습니다.
저도 아버지가 저를 낳을 때 쯤에 결혼해서 자식을 봤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실 때 똘망똘망했던 손자 손녀들은 이제 부쩍 커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간혹 제 자식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 때 아버지와 제가 나란히 있던 모습이 떠오르곤 합니다.
가만히 돌아보니 제가 살아가는 인생의 궤적도 아버지와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 같더라고요. 결혼도 느지막히 했고, 자녀 숫자도 비슷하고…. 이렇게 인생의 사이클이 비슷하게 흘러가는 게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인생 흐름을 살펴보니 앞으로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보이기도 했습니다.
어르신을 도와드리는 봉사활동을 나갈 때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납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더 잘 해 드릴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에 때로는 봉사활동에서 어르신들을 더 잘 보살펴드릴 때도 있습니다. '살아계실 때 더 자주 찾아뵐 걸'하는 후회도 합니다. 아무래도 자식들 다 객지에서 보내고 많이 외로우셨을텐데 사정상 모시지는 못해도 자주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한 마음입니다.
아버지, 아버지를 보면서 삶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고령 집에 홀로 계신 어머니도 저희 형제들이 잘 모시겠습니다. 떠나계신 그 곳에서 그간 저희 형제들을 키우면서 했던 고생 잊으시고 편히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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