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남편 그림을 보게 되면 남편을 만난 것처럼 가슴 떨려"
"생각만 해도 먹먹해지는 존재"
1997년 6월 1일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오랜 투병생활도 묵묵히 이겨낸 그는 그 날 마지막 생의 끈을 놓고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 때 내 나이 50을 갓 넘긴 인생을 알까말까한 나이. 장례식날 추적거리며 내리던 비도 그치고 장례를 치르는 중 하늘에 둥그렇게 떠 있던 선명한 무지개. 아마도 내 남편이 타고 간 무지개 다리라고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미술학원에서 학생과 강사로 처음 만났고 하필 집도 같은 방향이라 강습이 끝난 뒤 데려다 주며 서로 정이 들었던 우리. 나는 남편을 '선생님'이라 부르면서 따라다녔고, 함께 학원 근처 분식집에서 우동을 먹으며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참으로 순수했다. 결혼 후 단칸방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했고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일하는 남편의 월급도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난 남편을 '그림에 대해서는 천재'라고 믿었기에 힘든 줄 몰랐다.

결혼 생활 동안 난 한 번도 남편이 그림을 그리지 않은 날을 본 적이 없다. 종이에 스케치라도 해야 잠자리에 들던 내 남편.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으로 물감과 캔버스 등 작품 재료를 사며 행복해하던 사람. 그 사람은 한 집의 가장으로 살기보다 한 사람의 화가로 살고 싶어했고,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다. 남편이 하늘의 별이 되고 나는 결심했다. 남편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고.
자식들 중 제일 맏이인 딸은 미술을 전공하러 독일에 가서 만난 독일 젊은이와 결혼해서 남매를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나는 독일사위와 대화하기 위해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지역에서 열리는 국제 체육대회에서 영어통역봉사를 하고 남는 시간에는 바느질을 배워서 남편이 없는 상실감을 메꾸고 자존감을 채웠다.
지금 생각하면 참 열심히 살았던 나의 50대, 60대. 세월은 후딱 지나 어느새 나는 손자, 손녀 6명을 가진 할머니가 되었다. 큰 아들은 나와 가까운 곳에 살면서 쌍둥이 아들 둘을 낳아 내게 효도를 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대학에 갓 입학했던 막내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중·고등학교의 미술교사가 되었다. 감사할 일이다.

집을 둘러보면 남편이 남긴 그림들이 제법 많다.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그림들. 남편의 그림이 눈에 익숙하다가도 어쩌다 집 밖에서 남편의 그림을 보게 되면 마치 그 곳에서 살아있는 남편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떨린다. 그렇게 남편은 내겐 생각만 해도 먹먹해지는 존재다.
어리디 어린 스무살 갓 넘은 나이에 결혼해서 아이들 셋의 엄마가 되는 동안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은 다 잊고 싶다. 지금도 남편이 내게 잘 해준 것만 생각난다. 남편이 투병 중일 때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래도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정말 세상 떠나기 전 할 말도 많았는데….
장례식 후 100일동안 미사를 다니던 때, 100일이 가까워올 때쯤 남편이 내 꿈에 나타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이 말 할 걸, 저 말 할 걸, 하고 생각하면 더도 덜도 말고 며칠만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못 다한 말이 많은데….
언젠가 내가 내 남편 곁으로 가는 그날, 나는 남편에게 말하고 싶다. "나 잘하고 왔지? 당신이 내 남편이어서 정말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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