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 지음/ 바틀비 펴냄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명작을 통해 그 시대의 세계사를 엿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고대 그리스 문명부터 중세를 거쳐 대항해시대와 산업화, 제국주의의 근대를 지나 제1·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27편의 명작에 질문을 던지고 풀어가는 한 권으로 읽는 세계사다. 시대순으로 정리되어 있어 다 읽고 나면 유럽사 전체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하기 쉽게 구성돼 있다.
지은이는 스스로 '역사 덕후'라고 이야기할 만큼 역사적 유래를 파고 든다. 그리고 문학과 역사, 인간에 관심 많은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져 특유의 입담으로 숨은 이야기를 풀어낸 전작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는 10년 넘게 사랑받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중국과 대만으로도 번역 출간돼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샤를 페로의 '장화 신은 고양이'는 어릴 때 누구나 한 번쯤 읽어봤을 동화책이다. 총명한 고양이가 자신의 주인인 셋째 아들을 출세시켜 영주로 만드는 줄거리다. 지은이는 '고양이가 하필 왜 장화를 신었을까'라는 의문으로 시작해 당시 시대적 배경을 풀어준다.
당시 서유럽 봉건사회에서는 신발의 역할이 중요했다. 특히 황제의 근위대인 총사들은 승마용 부츠를 즐겨 신었다. 작품 속에서 고양이가 셋째 아들에게 승마용 부츠를 달라고 한 것은 총사의 자격을 요구했다는 뜻이다. 장화는 고양이를 총사로 만들어주었고, 고양이는 총사로서 충성을 다해 자신의 주군을 진정한 귀족으로 만들어준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고양이가 샤를 페로 자신이라는 점이다.
페로는 프랑스 파리의 부유한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나, 법을 공부한 후 콜베르의 비서가 되었다. 그가 모신 콜베르는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재무장관과 해군장관 자리에까지 오른다. 그 덕에 영지를 획득하고 귀족이 돼 작위를 아들에게 물려준다. 콜베르의 일생은 루이 14세 시절 법복귀족의 성장을 보여준다. 결국 귀족이 된 콜베르는 방앗간 집 셋째 아들이고, 콜베르의 비서인 페로는 주인을 영주로 만든 장화 신은 고양이였다.
지은이는 그림형제의 신데렐라에서도 의문점을 집어낸다. 신데렐라는 왜 자정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했을까. 여기에도 당시 시대적 배경이 숨어 있다. 동화 속 '귀천상혼'(귀한 신분의 사람과 천한 신분의 사람 사이의 혼인)은 현실에선 거의 불가능했고 설사 이뤄지더라도 아내는 남편의 직위나 특권을 함께 누릴 수 없었다. 시댁에서 차별받고 따돌림당하는가 하면 심지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더욱이 동화에서처럼 그 대상이 왕자라면 더욱 그렇다.
이런 배경 속에서 동화 속 요정이 "자정까지 돌아오라"고 당부한 것은 신데렐라에게 왕자와 밤을 보낸 뒤 한낱 첩으로 전락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결국 신데렐라는 자정 전에 집에 돌아왔다. 신데렐라가 진심으로 그리웠던 왕자는 신분과 상관없이 그녀를 진지하게 대하겠노라고 다짐하면서 그녀는 정식으로 왕자비가 될 수 있었다.
지은이는 들어가는 글을 통해 "역사가 지루하다는 생각부터 든다면, 다른 관점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차별과 폭력에 맞서 각 시대의 사람들이 어떤 역사를 이야기로 남겼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고 권했다. 376쪽, 1만9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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