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밴드 나릿' 김수경 씨 "창작곡 대부분이 대구 소재…문화의 바다 이루겠다"

입력 2022-11-16 14:08:34 수정 2022-11-16 17:34:59

국악 대중화 목표로 시작한 밴드…약령시·북성로 등 대구 지역 소재로 20곡 이상 작곡
"지역 활동 함께하는 동료 예술가들 있어 행복"

국악밴드 나릿 리더 김수경 씨와 멤버들이
국악밴드 나릿 리더 김수경 씨와 멤버들이 '북성로 공구가' 뮤직비디오 촬영 중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악밴드 나릿 제공

'그때여 대한민국 근대 1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채/ 비워져 가고 사라져 가는/ 대구 북성로의 흔적을 그려내는/ 북성로 공구가가 들려오난디/ 한국전쟁을 거치며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폐공구 수집상을 시작으로/ 기계며 부품이며 공구들이 들어차기 시작하는데/ 그때 그 시절부터 지금의 북성로의 모습을 / 갖추어가고 있었던가 보더라// 뚱땅 뚱땅 뚜둥 땅땅/ 뚱땅 뚱땅 뚜둥 땅땅/ 쇳물이 끓는 소리/ 쇳물이 굳는 소리/ 망치는 부지런히 쇠를 다듬는구나/ 갖은 크기의 볼트 너트는/ 제 짝을 찾아서 조여지고/ 선반밀링머신은 제멋에 겨워서/ 온갖 가지 모양을 낸다….'

국악밴드 나릿의 자작곡 '북성로 공구가(歌)'의 일부다. 나릿은 경북대 국악과 출신 김수경(36) 씨가 주축이 돼 2013년 결성한 팀이다.

"미래가 막막했던 20대 후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외부에서 연락을 받고 섭외를 받지 않는 이상 난 노래를 부를 수는 없는 건가.' 그러면서 든 생각이 흐르는 대로 둬선 안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공연을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밴드 결성으로 이어지게 됐죠."

최근 국악은 해외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유명 한류 아이돌이 국악을 음악에 녹여내며 관심을 끌기도 하고, 여러 국악밴드의 활약으로 국악이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10년 전만 하더라도 '국악앙상블', '퓨전국악단' 식의 이름이 대다수였고, '국악밴드'는 낯선 수식어였다.

"당시 많은 젊은 국악인들의 생각처럼 저 또한 '국악의 대중화'가 목표였어요. 대중이 국악을 친근하고 재밌게 느껴야 국악인이 설 자리가 많아진다는 생각이었죠. 좀 더 대중적인 느낌을 의도적으로 가져가기 위한 이름이었습니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고도 싶었습니다."

'나릿'이란 이름에도 이 같은 목표가 담겨 있다. 나릿은 냇물을 의미하는 옛말인 '나릿물'에서 따왔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큰 물줄기를 이뤄 바다로 나아가듯, 당시의 작은 시도로 언젠가는 '문화(국악)의 바다'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다.

나릿은 지난 10년 동안 여러 무대에 오르며 다양한 창작활동을 해왔다. 독특한 점은 20곡이 넘는 창작곡 대부분이 대구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5년 발표한 1집 앨범 '령(令)바람 쐬러가자'에 담긴 '령바람'은 대구 약령시를 노래한 곡이다. 같은 앨범에 수록된 '봄의 염원'은 민족저항시인 이상화의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전문에 곡을 붙인 작품이다.

2018년 '피아노와 판소리' 프로젝트로, 김수경 씨가 직접 작창해 선보인 창작판소리 '북성로 소릿길'도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 작업이다. 대구읍성이 허물어진 이야기에서 시작해 북성로의 상점 이야기 등 북성로 100년의 역사를 노래에 담았다. 당시 공연은 북 대신 피아노 반주에 맞춘 색다른 소리조합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안겼다.

'북성로 공구가'는 창작판소리 '북성로 소릿길'의 한 대목이다. 나릿은 이후 이 대목을 밴드 편성으로 편곡해 뮤직비디오로 선보였다.

"1집 앨범 제목인 '령바람 쐬러가자'는 선조들이 약령시에 갈 때 썼던 말이라고 합니다. 이런 예쁜 표현, 아름다운 이야기를, 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곡이 '령바람'이었어요. 이런 식으로 작업을 이어가다보니 저 또한 흐릿했던 역사에 대한 가치관이 더욱 선명해지는 계기가 됐고요. 고민해보면 제가 나고 자란 대구에 관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한 것 같습니다."

그는 올해 '꿈꾸는 돌'이란 의미의 '몽석가'란 판소리 작창 작업을 시작했다. 의인화한 돌의 시선으로 대구 북성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업이다. 음악적으로는 북 반주에 맞춘 전통 판소리에 미디를 활용한 현대음악적 색채를 덧입힌다는 구상이다.

이처럼 그는 앞으로도 꾸준히 대구를 노래할 계획이다. "장르는 다르지만 '훌라' 등 대구에 애착을 갖고 활동하는 또래 예술가 집단의 활동을 보면서 '도시가 빛나고 있구나'란 느낌을 받습니다. 지역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동료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도 큽니다. 이들과 함께 활동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