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경청

입력 2022-11-10 10:12:13 수정 2022-11-11 19:00:27

김혜진 지음/ 민음사 펴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경청(김혜진 지음/ 민음사 펴냄)
경청(김혜진 지음/ 민음사 펴냄)

"전 가끔 그런 생각해요. 요즘 사람들은 다 반성에 미쳐 있는 게 아닌가. 어디서나 반성하라고 난리잖아요. (중략) 그런데 생각해 보면 실은 반성은 본인을 위한 거 아닌가요? 같은 실수를 두 번 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는 소설가 김혜진이 신작 '경청'으로 돌아왔다. 대구 출신의 작가는 2012년 등단 이후 '중앙역', '딸에 대하여' 등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문학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와 딸에 관해 다룬 '딸에 대하여'는 지난 4월 프랑스의 세계적인 출판사인 갈리마르에서 출간되기도 했다.

이번 장편소설은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차단당한 뒤 인생이 멈춰 버린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유명한 심리 상담사인 '해수'는 한 방송 출연을 계기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다. 대본만 보고 던진 무심한 발언으로, 내담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가해자로 지목된 것이다.

그동안 쌓아왔던 명예와 관계가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무너졌다. 국민 상담사로 이름을 날린 해수는 그 사건 이후 역적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다. 그의 무분별한 언행을 비판하는 기사가 나왔다. 온라인상에는 사실과 허구가 교묘하게 뒤섞인 '저격글'도 빠르게 확산했다.

이 여파는 현실의 해수에게도 이어진다. 직장인 상담 센터에서 해고를 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단골 음식점 매니저도 '오지 말아 달라'며 박대한다. 이 과정에서 남편과 친구, 믿었던 부하 직원과의 관계마저 틀어진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명은 왜곡돼 오히려 해수를 위협한다. 완전한 고립. 더 이상 그에게 말을 걸 사람도, 그의 말을 들어줄 사람도 없다. 과연 해수가 겪은 고통은 그가 저지른 잘못에 상응하는 것일까.

막막한 상황 속에서 해수가 선택한 발버둥은 편지를 쓰는 것이다. 사건 이후 해수는 집 안에 틀어박힌 채 처음 자신에 대한 기사를 썼던 기자, 관계를 끊은 친구, 갈라선 남편 등에게 보낼 편지를 쓴다. 정작 편지가 이들에게 전달되는 일은 없다. 변명과 후회, 원망 사이를 오가다 찢기고,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언제나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열기엔 턱없이 부족한 글이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실은 그럴 마음도 별로 없는 글이고, 그러므로 폐기되어 마땅한 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해수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것은 우연히 길고양이 '순무'와 순무를 돌보는 아이 '세이'를 만나게 되면서다. 세이와 함께 순무를 구조하는 일에 몰입하면서 해수의 내면에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는데….

소설은 모두의 비난을 받는 해수에 대한 중간자적 입장을 고수한다. 독자들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무거운 대가를 치르는 그를 보면서 '용서받지 못한 가해자' 혹은 '가혹한 누명을 뒤집어쓴 피해자'를 떠올릴 수 있다. 한편으론 '역경에 굴복한 패배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의 이러한 의도는 '경청'이 담고 있는 굵직한 메시지와도 연결된다. 실수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그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는 얘기다. 당장 죽일 듯이 물어뜯지 말고, "그냥 듣기만" 하자고. 312쪽, 1만5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