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정 소설가
몇 년 전 식당 할 때의 일이다. 전동휠체어를 탄 남자가 가게 앞 입간판의 메뉴를 보고 있었다. 불고기에 쌈 채소가 곁들여지는 요리였다. 나는 카운터에 앉아 유리문 너머의 그를 힐끗 보았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무렵이었다. 남은 재료를 체크하고, 어수선한 실내를 정리한 뒤에도 남자는 그대로 있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남자가 그 자리에 오래 머물자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가까이에서 본 남자는 서른쯤 된 젊은이였고, 휠체어 팔걸이에 얹힌 손가락 정도만 움직일 수 있는 중증의 장애가 있었다. 말을 걸려고 하는데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손가락으로 간신히 연결 버튼을 누른 남자가 수화기에 대고 다짜고짜 짜증을 냈다. "내가 알아서 한다고!" 괜히 머쓱해진 나는 다시 계산대로 돌아왔고, 남자는 여전히 그곳에 남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윽고 남자가 식당 안으로 들어와 그 요리를 주문했다. 갓 볶은 고기와 채소가 남자 앞에 놓였다. 그런데 남자는 그것을 바라보기만 할 뿐 먹지를 않았다. 식어가는 음식이 안타까워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안 드세요?"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할 수 없어 한없이 적막한 그 눈빛을 보고서야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손바닥에 상추를 펴고 그 위에 밥과 고기를 얹어 끝을 야무지게 모았다. 내가 동그랗게 싼 쌈을 내밀자 그가 받아먹었다. 그가 입을 벌릴 때마다 전에 삼킨 상추의 파편이 혀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밥공기가 다 비워질 때까지 우리는 말이 없었고, 말보다 더한 무엇이 서로의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식사를 끝낸 남자가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아까 화내서 미안해, 엄마. 아냐, 먹었어. 진짜야. 걱정하지 마." 남자가 식당을 떠난 뒤, 나는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오래오래 생각했다.
가까이 있던 이의 부재를 실감하는 것은, 자잘하고 사소한 일상을 통해서다. 함께 백두산을 등정했거나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를 본 추억은 거대하고 희귀해서 살면서 겹칠 일이 거의 없다. 반면, 울릴 때마다 꺼놓고 후회하던 알람 소리나 끈질기게 시도하던 아재 개그는 생활 곳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지정석처럼 그가 늘 앉던 자리, 집 안 곳곳에 배어있는 그녀의 손길은 남겨진 사람에게 피할 수 없는 슬픔이 되고, 그 슬픔은 나날이 자라나 고통을 준다.
엄마는 아들이 굶게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떠나야만 하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고 그리하여 남자는, 이보다 더 사소할 수 없는 밥 먹는 일에서 엄마의 부재를 절감한다. 당장은 그들에게 일어난 하루지만 이것은 언젠가 일상이 될 것이고, 그 일상은 나를 포함한 누구에게라도 닥칠 일이다. 아무도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경험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들 곁에 있지 못해 연신 전화를 해대던 엄마도, 그 엄마에게 화를 냈다가 다시 사과하던 남자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이의 부재로 고통스러워하는 누군가도 당신이 혼자라고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잘것없는 내 쌈이, 혹은 그 쌈 같은 존재가 당신 곁에 있으니 아주 잠시라도 덜 외로웠으면 좋겠다. 부디, 너무 처절하게 슬퍼하지는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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