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수집가들 몰려 북새통…김현철·김현식 등 최초 공개반 눈길
"이리 와보셔요, 이것은 어때요?" "사운드가 너무 올드하지 않아서 듣기에 좋으실 겁니다."
5일 오후 서울 도심 문화역서울 284 앞에는 긴 줄이 섰다. 저마다 패딩 점퍼와 조끼 등으로 추위에 대비한 이들은 한 손에는 물건들을 담을 수 있는 에코백이나 종이봉투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바로 국내 희귀 LP 음반을 만나볼 수 있는 레코드 축제인 제11회 서울레코드페어다.
음악을 만드는 레이블이나 음악가가 대중에게 음악과 음반을 손쉽게 홍보하고 판매하는 자리로 매년 열리는 행사다. 그러나 지난 2019년 행사를 마지막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2020∼2021년에는 열리지 못했고, 올해 초에는 홍대 인근에서 축소된 규모로 열렸다.
이에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열리던 문화역서울 284에서 제대로 음악 팬들을 맞는 것은 3년 만인 셈이다.
행사는 이날 오전 11시 개막했지만, 정식 입장 전부터 행사장 인근은 소문을 듣고 온 음악 팬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정오 즈음에서는 100여 명이 입장을 위해 긴 줄을 섰고, 불과 1시간 동안 이곳을 찾은 이만 1천500여 명에 달했다.
주최 측은 "10년 넘게 고속 성장을 구가한 서구 시장과 달리 지난 2∼3년간 본격적으로 성장한 국내 레코드 시장이 어디까지 커질 수 있을지 예측해 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국내 레코드 시장은 정확한 판매량 집계가 이뤄지지 않기에 서울레코드페어에 모인 관객 수가 국내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는 지표로 인식돼왔다"고 설명했다.
주최 측은 "일부 희귀한 LP는 개장과 동시에 팔려나가기 때문에 원하는 음반을 찾고자 일찌감치 찾은 방문객이 상당수"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코로나19 이전인 지난 2019년 행사 때에는 무려 2만5천명이 다녀갔다.
그러나 올해는 최근 빚어진 이태원 참사로 공연 등 부대 행사를 취소하고 레코드 전시·판매 등 행사 본연의 프로그램만 운영하기에 이보다는 적은 방문객 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주최 측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방문객을 일정 단위로 끊어 입장시켜 비좁은 행사장 내부에서의 혼란을 최소화했다. 또 장내 곳곳에 보안 요원을 배치해 안전에 온 힘을 쏟는 모습을 보였다.
행사장에서는 70여 개 이상의 부스가 마련돼 다양한 LP를 전시·판매했다.
서태지와아이들, 듀스, 전람회 등 국내 희귀 LP는 물론 미국, 일본, 제3세계 등 다양한 LP가 팬들을 만났다. 팝, 록, 재즈, 힙합, 댄스 등 장르도 각양각색이었다. LP 외에도 추억의 카세트테이프나 CD, 음악 관련 서적도 판매됐다.
LP가 7080시대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은 깨진 지 오래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실제로 LP를 듣고 자란 40대 이상 중·장년층보다는 '힙한 레트로 문화'의 하나로 소비하는 20·30대 방문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방문객들은 LP로 빼곡하게 채워진 가판대에서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상품을 하나 하나 넘기며 원하는 가수가 있나 찾아봤다. 마음에 드는 LP를 찾고서는 함께 방문한 연인에게 '이것 봐'라고 보여주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가수 김현철이 동아기획 시절 발표한 1∼3집과 영화 OST '그대 안의 블루'·'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등 다섯 장을 한 데 묶은 '김현철 동아 레코즈 이어스 1984∼1994'(Kim Hyun Chul DONG-A RECORDS YEARS 1984∼1994)는 제11회 서울레코드페어 한정반으로 특별 제작됐다.
이 밖에도 김현식, 안다영, 이문세, 이디오테잎 등의 명반이 LP로 제작돼 처음으로 공개됐다.
일부 희귀 LP는 수십만원에 달하는 가격표를 달고도 음반 애호가에게 속속 팔려나갔다. 일본 밴드 안전지대의 보컬 다마키 고지(玉置浩二)의 솔로 LP는 45만원, 일본 시티팝의 거장 야마시타 다쓰로(山下達郞)의 작품은 50만원의 가격표가 매겨졌다.
남편과 함께 행사장을 찾은 박문경(33)씨는 일본 밴드 키린지(KIRINJI)의 3집 LP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35만원을 결제했다. 적지 않은 가격임에도 원하던 희귀 음반을 찾았다는 기쁨에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박씨는 "작년부터 LP를 모으는 취미가 생겨서 이 같은 행사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편과 찾아왔다"며 "가격대가 있어 고민하기는 했지만 원래 좋아하던 밴드라 구하게 돼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행사는 오는 6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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