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대구 희생자 장례 이튿날…가족·지인 "희생자는 밝고 착하고 예쁜 아이"

입력 2022-11-01 17:50:01 수정 2022-11-01 21:25:34

대구 희생자 20대 여성들, 참사 당일 오후 9시까지 계속 연락 닿아
철이 일찍 든 착한 희생자들, "서울에서 자리잡아 부모님께 효도하겠다…"
친구들과 함께 이태원 찾았다 홀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1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안병근올림픽기념유도관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1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안병근올림픽기념유도관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은 대구 희생자 2명의 빈소에는 이틀째 지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유족과 지인들이 기억하는 희생자들은 '밝고 철이 일찍 든 착하고 예쁜 아이'로 안타까움을 더했다.

1일 희생자 A(23) 씨의 시신이 안치된 대구 동구 한 장례식장에 조문을 온 친구들은 "아직까지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며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친구들이 기억하는 A씨는 춤도 잘 추고 뭐든 적극적으로 열심히 하는 친구였다. 서울에서 생활했다던 그는 철도 일찍 들었다. 춤에 관심이 많았던 A씨는 학생들을 상대로 춤 레슨을 진행하기도 했고, 아르바이트도 하며 항상 바쁘게 살았다. 그런 A씨가 걱정된 친구들은 "좀 여유롭게 살라"고 잔소리를 건네기도 했다.

사고가 난 29일 오후 9시까지만 해도 A씨와의 연락에는 문제가 없었다. 한 친구는 A씨에게 "아줌마 이제 이태원 갈 나이가 아니지 않느냐"며 문자하며 장난치기 바빴고 A씨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린 게시글을 보며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고가 발생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이후 A씨와 연락이 끊겼고,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친한 지인(25)은□ "라틴댄스를 전공한 친구는 24시간이 부족할 만큼 열심히 사는 친구였다. 평소에 '얼른 서울에 자리 잡아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는 말도 자주 했다"며 "사고 당일에도 SNS로 연락을 꾸준히 주고받았다. 마지막 메시지를 보내놓고 다음날이 됐는데 답이 없었다. 뒤늦게 사망 소식을 접했다"고 전했다.

그는 가족들에게도 살갑기만 한 아이였다. 유족에 따르면 A씨는 참사 당일 가족들에게 "이태원에 간다"고 미리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역시 A씨의 가족들은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친척들은 비어 있는 빈소에 들어가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A씨 삼촌은 "그냥 믿기지 않는다. 조카 부모님들은 계속 울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많이 아프다. 조카는 생전에 살갑고 밝은 아이였다. 너무 그립다"고 했다.

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 희생자 B(24) 씨 역시 사고 당일 홀로 현장을 빠져나오지 못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유족에 따르면 대구에 거주하던 B씨는 핼러윈을 맞아 친구들과 서울을 찾았다. B씨는 참사가 발생한 골목에서 친구들과 손을 꼭 잡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밀려드는 군중에 B씨는 그만 친구들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가족들이 B씨의 사고 소식을 접한 건 함께 있던 친구들로부터였다. 친구들이 B씨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고 위험 상황을 즉각 가족에게 알렸다.

고인이 된 B씨 역시 밝은 아이였다. 그의 동생은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밝았던 사람'이라고 취재진에 전했다. 밝고 맑은 성격에 가족 모임에서는 늘 분위키 메이커를 자처하던 사람이었다.

이날 빈소를 함께 지키던 가족들 모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고"라며 B씨를 '가족 먼저 걱정하던 성품 바른 아이'로 기억했다.

B씨 숙모는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모두 많이 생각하던 아이였다. 가족들도 사이좋게 잘 지내다보니 아이도 가족들 다 잘 챙기는 바른 아이였다"며 "앞으로 남은 가족들이 잘 추스르고 일어나야하는데 걱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