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가창면 행정복지센터에서 대구 10월 항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 6명 대상
속에 담아둔 이야기 꺼내는 것만으로도… 곳곳에서 눈물 바다
달성군정신건강복지센터 기존 사업으로 이뤄진 거라 한계도
27일 오후 2시쯤 대구 달성군 가창면 행정복지센터. 나이가 지긋한 대구 10월 항쟁 유족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사회복지사와 마주 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족들은 탁자 위에 놓인 화장지와 손수건 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유족들은 "70년 넘게 가슴에 묻어둔 아픔을 이제야 털어놓게 됐다"고 했다.
매일신문의 탐사보도(9월 30일부터 10월 24일까지 5편 연재)와 대구 10월 항쟁 유족들의 요구에 대구시가 민간인 학살 관련 '트라우마 치유 상담'에 나섰다. 대구시 차원에서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을 대상으로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끔찍한 기억을 안고 사는 유족들의 정신건강 관리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날 달성군 정신건강복지센터 소속 정신건강 사회복지사 3명이 나와 10월 항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 회원 6명을 대상으로 일대일 상담을 진행했다. 유족들은 15문항으로 구성된 '단축형 노인 우울 척도' 검사지를 작성한 뒤 한 사람당 30분에서 1시간까지 상담을 받았다.
수성구 파동에서 상담을 받으러 온 유족 A(73) 씨의 아버지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전 '빨갱이'에게 밥을 줬다는 게 빌미가 돼 경북 청도 소속 경찰들에게 끌려가 행방불명됐다.
이후 한 달 뒤 유복자로 태어난 A씨는 슬픈 과거를 숨긴 채 늘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왔다. 어머니와 유일한 형제였던 오빠도 최근에 세상을 떠나 A씨에겐 이러한 슬픔을 털어놓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상담 도중 눈물을 쏟은 A씨는 "아버지에 대한 것은 남편과 자식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며 "누군가에게 속에 담아뒀던 말을 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마음이 정화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늘 이후에도 수성구 정신건강 복지센터에서 계속 상담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유족들의 정신 치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대구시는 기존의 통합정신건강증진사업과 연계해 이번 상담을 진행했다. 지역 8곳 구·군별 정신건강 복지센터 중 학살장소인 가창골이 있는 달성군에서 초기 상담을 진행하고, 희망하는 유족의 경우 거주하는 구·군 센터로 승계해 계속 무료로 상담을 받도록 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민간인 희생자 유족만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보다 폭넓은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영희 10월 항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 회장은 "오늘 상담은 유족들의 정신 치유를 위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10월 항쟁 등 국가 폭력 트라우마에 대해 전문가가 지속적인 치유와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유족이지만 현재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도 지원 대상에 포함되도록 별도 사업으로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오늘 진행한 초기 상담에 그치지 않고, 각 지역 센터로 연계하려면 '허브' 역할 센터가 필요하다. 이런 역할을 할 곳으로 대구시정신건강복지센터나 대구시청 산격청사가 있는 북구지역 센터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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