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김소월과 박목월

입력 2022-10-14 12:28:08 수정 2022-10-17 07:53:07

손진은 시인

손진은 시인
손진은 시인

박목월 아니 박영종이 스무 살 무렵 '소원(素園)'이란 아호를 받았고 그 이름이 실제로 불리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소원(素園)'은 문자 그대로 '소월의 정원'이라는 뜻인데 김동리의 맏형 김범부가 소월의 시를 워낙 좋아하고 기질도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준 이름이다. 김소월의 시편을 온종일 끼고 사는 그의 모습이 친구 형의 눈에도 보였던 모양이다. '목월(木月)'이라는 이름도 '문장(文章)'에 투고할 때 그가 좋아했던 두 사람, 수주(樹州:변영로)와 김소월의 이름에서, '나무 수(樹)'자를 '나무 목(木)'으로 바꾸고 소월의 '월(月)'을 그대로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만 필명에서 느껴지는 어감은 마치 항렬의 끝자리처럼 목월이 수주보다 소월에게 훨씬 경사되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박목월은 생전에 '나의 애송시'를 비롯한 여러 편의 김소월 관련 글을 쓰고, 또 1958년에는 '정본 김소월 시 감상'이라는 단행본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뿐만 아니다. 1968년에 간행한 그의 시집 '경상도의 가랑잎'에 김소월의 1926년판 시집 '진달내꼿' 수록 시 '왕십리'의 핵심구절 "가도가도 왕십리"가 들어가는 동명의 시를 창작하기도 한다. 박목월이 습작기뿐만 아니라 시 창작 기간 내내 김소월 시의 자장과 영향 아래에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평생을 어떤 사람에게 기울인다는 것은 참 부럽고 또 아찔한 일이기도 하다. 부럽다는 건 열정을 두고 하는 말이고, 아찔하다는 건 아류가 될 위험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나 박목월은 명민하다. 그는 사숙하던 김소월에게서 서서히 양가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선망하면서도 거부하는 몸짓 말이다. 그것의 극점에 놓인 시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다룬 김소월의 '초혼'이다. "나는 '초혼'을 좋아하지 않았다. 느낌표가 달린 대로 목소리를 내어 하늘을 향해 부르기가 싫었다. 사랑하는 그 사람의 넋을 소리를 질러 풀어버리기보다 '내 안'으로 말해서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내 안으로 말하고 느끼는 시'. 박목월 시의 확연한 개성은 이 간명한 언술로 요약된다.

박목월은 김소월의 시를 어느 누구의 시보다 선망하고 있으면서도 서럽고 절망적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감정의 과잉을 문제 삼는다. 그는 뜨거운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름이여!" 하고 절망적인 감정을 소리 질러 불러버리는 감정의 노출을 싫어한다. "부르는 소리는 빗겨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하는 '초혼'의 "아무리 불러도 응답조차 없는 하늘과 땅 사이의 광막한 허무감"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는 없을까? 박목월의 인내심은 30년 이상이나 지속된다. 30대 초반의 아우의 사망으로 인해 이승과 저승의 좁힐 수 없는 거리감을 표현할 때가 온다. 그때 비로소 김소월 '초혼'의 구절들은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고 소리가 들리는 세상"이라는 '하관'의 독창적이고 절제된 구절로 새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한 사람을 사숙한다는 것은 그로부터 온전히 빠져나올 수 있을 때 완성된다. 그것은 선망과 불만, 그리고 자신만의 방법에 대한 불면의 밤을 필요로 한다. 굳이 예술 분야만의 일이 아니다. 선망하는 대상을 만나야 삶이 긴장되고 세계관의 밀도가 웅숭깊어진다. 깊이 빠져보시라. 때가 되면 그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도 오게 마련이니까. '큰 바위 얼굴'을 보면서 자란 아이가 훗날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