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기사와 귀부인 사이 로맨스 '르네상스'로 거듭나
메리 엘리자베스 트러스. 대처(총리 재임, 1979-1990)와 메이(총리 재임 2016-2019)에 이어 영국의 3번째 여성 총리다. 47세의 트러스가 총리가 된 지 이틀만인 9월 8일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서거했다. 유럽 44개 나라 가운데, 16개 나라의 최고 정치 지도자가 여성이다. 동양과 사뭇 다르다. 영국 역사 속 여왕과 여성 지도자에 얽힌 이야기를 들춰본다.
◆로마에 맞선 켈트족 여왕 부디카
영국 수도 런던의 중심지는 국회의사당 웨스트민스터 궁이다. 의사당 시계탑 건물, 일명 빅벤은 웨스트민스터 궁의 마스코트와 같다. 조선에서 세도정치의 폐해가 극에 달하던 1859년 시계탑 시계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높이 96m 짜리 탑 건축책임자 벤자민의 이름을 따 빅벤이라 불러왔다. 2016년 엘리자베스 2세 즉위 60주년을 맞아 명패를 엘리자베스 탑(Elisabeth Tower)으로 바꿔 달았다. 탑 하단에 건축 당시 "신이여 빅토리아여왕을 구하서소"라는 문구가 또렷하다. 영국의 상징은 2명의 여왕과 떼놓고 볼 수 없다.
엘리자베스 탑 길 건너 템즈강변으로 말 2마리가 끄는 2두전차 비가이(Bigae) 조각이 우렁찬 말울음 소리를 낸다. 흠칫 놀라 말 위를 보면 한번 더 놀란다. 아름다운 여인이 전차 위에 위풍당당 타고 있으니 말이다. 영국 국민이 애국가처럼 사랑하는 엘가의 1900년 곡 위풍당당 행진곡 가운데 '영광과 희망의 땅'이라도 연주되면 금상첨화다.
캠브리지 대학이 자리한 캠브리지 지역 켈트족 일파 이케니(Iceni) 부족의 여왕 부디카(Boudicea,보아디케아)다. 로마에 저항한 독립투쟁의 상징이다. 로마가 영국 땅에 처음 발을 내디딘 때는 B.C 55년. 주인공은 카이사르다. 카이사르는 B.C 54년에도 재상륙했지만, 식민지로 삼지는 못했다.
영국을 식민속주 브리타니아로 만든 황제는 뜻밖에 무공과는 관련이 없어 보였던 소아마비의 클라우디우스다. 클라우디우스 황제 군단은 43년 영국에 식민속주를 설치하고 지배범위를 넓혀 나갔다. 그 과정에 60년 부디카가 이케니족, 트리노반테스족 등의 연합군을 이끌고 로마지배에 맞섰다. 부디카 저항군은 로마의 상업중심지 론디니움(런던)을 불살랐다.
기세를 올린 켈트족의 거센 반발에 네로 황제는 영국철수를 고민했다. 전열을 정비한 수에토니우스 장군이 부디카 군대를 진압하지 않았다면, 세계사는 한참 바뀌었을 것이다. 위풍당당 행진곡의 주역이 켈트족에서 로마군단으로 바뀌는 사이 부디카의 운명은?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55-115 추정)는 부디카가 "포로로 잡히기 전 자결했다"고 적었다.
◆바이킹에 맞선 색슨족 여왕 에셀플레드
만리장성 너머 몽골초원에 살던 훈(匈奴)족이 중국과 대결을 피해 서진한 끝에 흑해 서부 연안 우크라이나 남부와 루마니아에 들이닥쳤다. 깜짝 놀란 게르만 일파 동고트족이 피난가면서 서고트족 등 다양한 부족이 연쇄적으로 서쪽 로마 제국 영내로 들어갔다. 앵글로족과 색슨족은 바다 건너 영국으로 쳐들어갔다.
수성에 실패한 로마군단은 410년 영국을 포기하고 대륙으로 돌아갔다. 영국은 앵글로족과 색슨족의 지역 왕국 할거시대를 맞았다. 300여년 지나 이번에는 덴마크 일대 바이킹이 영국으로 쳐들어왔다. 이때 바이킹에 맞선 여왕이 있었으니... 색슨계 위섹스 왕국의 위대한 왕 알프레드 대왕의 딸 에셀플레드(Aethelflaed, 870-918)다.
영국 중부 머시아 왕국 에셀레드 왕과 결혼한 에셀플레드는 머시아 왕국에서 능숙한 정치력과 행정능력을 발휘했다. 친정 위섹스 왕국의 오빠 에드워드왕과 손잡고 북쪽 요크를 거점으로 삼은 바이킹에 효율적으로 맞서며 색슨계 영역을 지켜냈다. 911년 남편 에셀레드 왕이 죽은 뒤에는 단독으로 머시아 왕국을 통치했다.
바이킹과 웨일즈의 틈바구니에서 강력하면서도 협상할 줄 아는 여성 통치자로 7년을 더 다스리다 918년 숨졌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던 해였다. 2018년 6월 12일 영국 공영 BBC 뉴스는 에셀플레드를 "유리천장을 부순 전사 여왕(The warrior queen who broke the glass ceiling)"으로 묘사했다.
◆중세 기사도 문학과 르네상스의 기원, 알리에노르
영국의 여성지도자 전통은 여전사 이미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1066년 영국을 정복한 프랑스 노르망디 공작 기욤(정복왕 윌리엄)의 노르만 왕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노르만 왕조의 2대 왕은 윌리엄의 아들 헨리 1세다. 비록 정부들한테 여러 아들을 뒀지만, 정비에게서는 아들 1명과 딸 1명을 뒀을 뿐이다. 아들이 죽자 헨리 1세는 딸 마틸다에게 영국 왕위를 물려주려 했다.
마치 신라의 진평왕이 성골 제도를 만들어 딸 덕만공주(선덕여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던 것과 같다. 하지만, 여왕에 대한 우려가 커 우여곡절 끝에 마틸다의 아들에게 영국 왕위를 넘기는 타협책이 나왔다. 마틸다는 앙주 백작 조프루아와 결혼했고, 둘 사이 아들 헨리 2세가 영국왕이 됐다. 헨리 2세의 왕비이자 마틸다의 며느리가 아키텐 공작 엘리노어(Eleanor). 중세를 풍미했던 자유부인 알리에노르 다키텐(Aliénor d'Aquitaine, 1122-1204)이다.
엘리노어의 아버지는 바이킹의 후손인 프랑스 아키텐 공작 기욤 10세다. 아버지는 딸이 15살 때 아키텐 공작령과 푸아티에 백작령을 물려줬다. 아키텐은 보르도를 중심으로 한 포도주 주산지다. 비옥하고 부유하다. 아키텐 동쪽 푸아티에 역시 농장과 목축지가 많다. 아키텐 공작 수입은 영국왕보다 많았다.
미모까지 뛰어났던 엘리노어는 프랑스 카페왕조 루이 7세와 결혼했다. 기욤 10세는 딸이 영지를 빼앗기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걸었다.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에게 영지를 상속한다는 조건이었다. 중세의 자유부인 엘리노어는 루이 7세와 딸 2명을 낳은 채 이혼했다.
이후 영국왕 헨리 2세와 재혼해 사자왕 리차드 1세와 대헌장으로 널리 알려진 존왕을 비롯해 5남3녀를 낳았다. 광활한 프랑스 서부 영지들은 영국왕에게 상속됐다. 존왕 시기 프랑스 영지 대부분을 잃고, 이는 훗날 영국과 프랑스 사이 백년전쟁의 불씨였다.
엘리노어는 프랑스 왕비 시절 남편 루이 7세와 2차 십자군(1147-1148)을 조직해 예루살렘으로 십자군 원정도 다녀왔다. 일부 문학작품에서 이슬람 지배자 살라딘과 염문설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물론 허구다. 엘리노어는 비록 왕은 아니었지만, 아키텐 공작, 프랑스 왕비, 영국 왕비, 나아가 아들 영국왕 리차드 1세의 섭정으로 왕 이상의 권세를 누렸다.
엘리노어의 역사적 의미는 분방했던 삶이나 정치적 궤적에 머물지 않는다. 기독교 찬가 일색의 중세, 기사문학을 낳으며 르네상스의 씨앗을 뿌렸다. 1170년대 엘리노어의 남프랑스 궁정에는 음유시인 트루바두르(Troubadour)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시를 읊었다. 이들이 읊는 시는 기사들의 영웅적인 전투에 그치지 않았다.
귀부인에 바치는 헌신적인 사랑도 녹여냈다. 기사문학과 성모마리아에 대한 헌신적 순종에 비견되는 기사도(Chivalry) 정신의 탄생이다. 트루바두르들이 읊은 기사문학과 기사도는 궁정 연애(Courtly Love)로 피어났다. 전쟁에서 주군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는 기사들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무한 충성과 애정, 존경을 바치는 연애다. 주로 청년 기사와 귀부인 사이 로맨스다.
12세기 말-13세기 초 남프랑스 엘리노어의 궁정에서 꽃핀 트루바두르 문화, 기사문학, 기사도에 이은 궁정 연애는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마침내 13세기 말 이탈리아 피렌체 공화국에서 인류사 문예사조의 한 획을 긋는 르네상스로 거듭난다. 단테가 베아트리체에게 바친 무한 사랑의 뿌리는 기사들이 귀부인에 바치는 궁정연애 스타일이다.
단테는 이를 녹여낸 작품 [신곡(La Divina Commedia, 神曲)]으로 르네상스 개막을 알렸다. 단테의 후배 페트라르카는 마음 속 연인 라우라를 그리며 많은 연시 칸초네를 써 신이 아닌 인간에 대한 사랑을 찬미했다. 단테 숭배자 복카치오는 [데카메론]에서 중세를 벗어난 르네상스 세속문학의 꽃을 활짝 피우며 현대 문학을 낳았다.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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