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속에 잊혔던 보물 보따리를 하나 얻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보따리다. 그 보따리 안에는 대한민국 문화계를 발칵 뒤집을 만한 보물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최근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은 아동문학가 윤복진과 근대기 예술자료들이 그 보물 보따리다.
윤복진은 박태준, 이인성과 함께 늘 문화예술사에서 회자돼 왔던 인물이지만, 월북했다는 이유로 자료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유족이 멈춰진 윤복진의 시간을 외롭게 지키고 있었다.
보물 보따리에는 윤복진의 친필뿐만 아니라, 작곡가 박태준과 홍난파, 현제명 등 음악인들의 자료들, 화가 이인성과 무영당 창업주 이근무의 활동을 추적할 수 있는 자료들, 전국적으로 이름난 주요 예술인들의 팸플릿과 사진들이 들어있었다. 윤복진이 대구만의 인물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대구가 근대기에도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중심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귀한 자료다.
일본 현대무용의 창시자인 이시이 바쿠의 대구 공연 프로그램, 영화감독 이규환이 해방 후 최초로 발표한 장편영화 <똘똘이의 모험>의 시나리오와 관련 신문기사를 보면 윤복진이 문학과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 무용 등 예술 전반에 조예가 깊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920년대 소년 문예운동을 함께한 윤복진과 윤석중, 신고송, 서덕출, 최순애와 이원수 등 전국의 소년문사들의 인연은 얼마나 각별할까. 윤복진이 조선일보 필자로 활동하던 즈음 이육사 시인이 기자로 활동했다.
이상화 시인이 윤복진을 만나러 무영당백화점을 드나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1930년대 무영당백화점 악기부에 모인 청년 이근무와 박태준, 윤복진, 이인성, 김용조 그리고 그들을 만나러 대구를 찾은 홍난파가 어울리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가슴 두근거린다.
4대 독자였던 윤복진은 6·25 전쟁기 월북하면서 고향 대구에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세 명의 딸들을 남겼다. 떠나는 발걸음이 가벼웠을 리 없다. 고향에 남은 가족들은 일평생 거주지를 옮기지 않았고, 늘 대문을 열어놓고 지냈다. 굴곡진 대한민국 근·현대사 속에서 월북한 가족을 둔 사람들의 일상이 어땠을지는 짐작할 수조차 없다.
아들이 그립고 걱정될 때마다 아들의 책을 태우며 시간을 보냈다는 어머니의 마음, 모두를 두고 떠나버린 남편을 생각하는 아내, 어린 시절 헤어진 탓에 할머니와 어머니의 이야기로만 전해들은 아버지의 유품을 바라보는 딸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딸은 자신이 일흔을 넘기고서야 아버지가 진심으로 그리워졌다고 했다.
10년 전 TBC가 제작한 라디오 다큐멘터리 <물새발자욱>을 통해 윤복진 유족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몇몇 연구자들이 그를 찾아갔다. 윤복진의 따님은 보자기로 조심스럽게 싼 자료들을 펼칠 때마다 큰 관심을 보이는 연구자들을 보며, 아버지의 예술세계가 관심을 받고 있음에 기뻐했다. 그런데 자료에 대한 개인적인 욕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다시 마음의 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2년 전, 처음 연락을 했을 때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시간을 두고 꾸준히 신뢰를 쌓아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는 라디오 다큐멘터리를 기획·진행했던 TBC 김도휘 아나운서의 도움이 컸다. 유족이 자료에 대한 기증 의사를 밝혀오기 직전에 망설이던 마음을 굳히게 해준 것도 김 아나운서의 전화 한 통이었다.
어렵게 지켜낸 자료를 대구시 아카이브로 떠나보내는 유족의 부탁은 아버지 윤복진이 제대로 조명되고 기억되길 바란다는 것뿐이었다. 이제 일제강점기 우리말로 된 노래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운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인 윤복진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가 제대로 빛을 볼 수 있도록 힘쓸 일만 남았다.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대구가 각별한 예술혼의 도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딸이 외롭게, 오랫동안 지켜온 아버지의 보따리를 문화계가 함께 풀어 그 의미를 공유했으면 한다. 윤복진의 따님 덕분에 대구의 근대 문화예술사가 한 뼘쯤 깊어졌다. 결국 예술사를 풍성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은 문화예술인 이외에도 그를 기억하는 가족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 누군가의 보물 보따리가 유족의 품에서 빛바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 보물을 세상 밖으로 꺼내 빛을 보게 하는 것은 지금 우리들의 몫이다. 유족의 슬픔과 그리움까지 감싸 안아 진정 그 예술가를 빛나게 하는 것까지가 말이다.
임언미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팀장, 대구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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