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책과 우연들

입력 2022-10-06 11:07:04 수정 2022-10-08 06:29:15

김초엽 지음/ 열림원 펴냄

첫 에세이
첫 에세이 '책과 우연들'(열림원)을 낸 SF 소설가 김초엽. 연합뉴스
책과 우연들(김초엽 지음/ 열림원 펴냄)
책과 우연들(김초엽 지음/ 열림원 펴냄)

"이야기를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근원에 있는 마음을 묻게 될 때 나는 가로등 길을 따라 집으로 걸어 돌아오던 열여덟 살의 밤을 생각한다."

SF 소설가 김초엽이 첫 에세이 '책과 우연들'을 출간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지구 끝의 온실' 등을 발표하며 국내 장르문학계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저자는 이제 읽기와 쓰기에 대해 얘기한다. 그는 이 책에 대해 "읽기 여정을 되짚어가며 그 안에서 쓰고 싶은 나를 발견하는 탐험의 기록"이라며 "내가 만난 책들이 쓰는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관해 말할 것"이라고 했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 자신이 이야기를 만들게 된 첫 계기를 회상한다. 거기엔 홀로 극장을 찾아가 영화 '토이 스토리3'를 보고 훌쩍이던 고등학생의 김초엽이 있다. "언젠가는 나도 이런 것을 만들고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든 생각이었다. 소설이나 영화 등 구체적 형식을 정한 것은 아니었어도,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하고 싶었다.

김초엽은 작가가 되기 전엔 부지런한 독자가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책장의 절반은 과학책이었고, 소설은 SF와 판타지만 읽었다고 한다. "조그만 취향의 원 안에서 빙빙 돌며 좋아하는 것들만 좋아하던 편협한 독자"였지만, 작가로서의 삶을 살면서 이런 태도를 바꿔나간다.

데뷔 이후 몇 편의 소설을 발표하던 와중에 저자는 한 가지 두려움에 시달린다. 알고 있는 지식을 다 써버렸고, 밑천이 바닥났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상상력과 지식은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 단 한 줄짜리 설명이라도 앞뒤가 맞지 않으면 독자들의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주머니를 억지로 쥐어짜는 기분'으로 몇 년을 버티니 깨달음이 찾아왔다. 밑천이 없더라도, 작가의 글쓰기는 '바깥의 재료를 가져와 배합하고 쌓아 올리는 요리나 건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재료를 더 많이 모으기 위해선 독서의 영역을 넓히는 수밖에 없었다. 관심 없던 분야의 책을 읽는 시간이 점차 늘어갔다.

"나에게는 영감이 샘솟는 연못도 비밀스러운 이야기보따리도 없다. 대신 나는 밖에서 재료를 캐내고 수집하고 쓸어 담는다. 마지막에는 모은 재료를 바닥까지 긁어다 쓰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김원영 작가와의 공저 논픽션 '사이보그가 되다'를 쓸 때, 그는 책의 주제인 '포스트휴먼과 장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는 써먹을 수 있을 만한 자료는 강박적으로 모았고, "뇌의 해석 틀이 프로젝트 주제와 동기화되는 느낌"을 받을 때까지 관련 논문과 책을 섭렵해나갔다고 한다. 부족하면 관련 전문가의 도움도 적극적으로 구했다. 이처럼 안개 속에서 더듬거리며 만들어낸 한 권의 책은 저자에게 '아는 걸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알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줬다.

김초엽은 SF 작가로서 그간 정립해온 생각들도 아낌없이 풀어낸다. 그는 "SF는 인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일반적인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과학기술이나, 거대한 우주공간이 등장하는 이야기 속,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없이 작아진다. 이 과정에서 SF가 "인간중심주의라는 오랜 천동설을 뒤집는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물론 이런 시도는 결국 '인간의 이야기'를 벗어날 수 없는 '불완전한 것'이다. 몇 편의 SF 소설을 읽는다고 해서 우리의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그러나 작가는 "한 번이라도 떠났다 돌아오는 것과 아주 떠나지 않는 것은 다르다"며 '불완전한 시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296쪽, 1만6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