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손주들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명절이 더 서글픈 아파트 경비원

입력 2022-09-12 15:13:33 수정 2022-09-12 21:07:25

24시간 교대제 근무 방식 탓에 자식들에게 헛걸음하지 말라고 하기도
명절에 늘어나는 쓰레기로 더욱 고단해, 노동계 '감시단속적 근로자' 지위 개선이 우선

지난 11일 찾은 대구 동구 한 아파트 단지. 이곳 경비원 서정대(69) 씨가 명절로 늘어난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임재환 기자
지난 11일 찾은 대구 동구 한 아파트 단지. 이곳 경비원 서정대(69) 씨가 명절로 늘어난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임재환 기자

5년째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서정대(69) 씨는 이번 추석 연휴 나흘 동안 이틀을 경비 초소에서 보냈다. 남들이 가족들과 오손도손 한자리에 모여 덕담을 주고받을 때, 아파트 단지를 관리해야 했다.

서 씨는 이번 추석에도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다. 하루 근무하고 다음 날 쉬는 '24시간 교대제' 방식 탓에 온전히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다. 그는 "아침 6시에 퇴근해 잠을 자고 또 새벽 출근을 준비해야 한다"며 "멀리서 자식들이 찾아와도 잠시 보는 게 전부라서 괜히 헛걸음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온 국민이 쉬는 추석 연휴에도 아파트 경비원들은 일터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다. 가족들이 북적거리는 명절 속에 이뤄지는 노동으로 서글픔은 더욱 크다. 노동계는 휴일이 보장되지 않는 현행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명절에 늘어나는 쓰레기는 경비원들을 더욱 괴롭힌다. 지난해 개정된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에 따르면 경비원들은 경비업무뿐만 아니라 아파트 주변 환경 청소와 재활용품 분리배출 등도 해야 한다.

대구 중구 한 아파트 경비원 김모(60대) 씨는 "선물 박스나 음식물 찌꺼기 등 온갖 쓰레기가 넘쳐난다"며 "분리수거도 잘되지 않아 분리수거장을 2~3시간마다 찾아 정리하고 있고 미화원들이 나오지 않아 평소보다 바쁘다"고 말했다.

격무에 시달리는 경비원들의 근로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노동계는 경비원들이 '감시·단속적 근로자' 지위에서 벗어나야 안정적인 근로가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은정 대구아파트경비노동자협회 활동가는 "일반 경비원들과 달리 아파트 경비원들은 육체적 노동이 많기 때문에 감시·단속적 근로자라고 보기 힘들다"며 "대부분 고령자인 탓에 과로사 위험도 상당한데 이를 막기 위해선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만약 일반 근로자들처럼 적용해버리면 임금이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지난해부터 근무방식 개편에 대한 컨설팅과 좋은 사례들을 공동주택 관계자들에게 안내하고 있다. 근로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계속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감시단속적 근로자=간헐적이면서 심신의 피로가 적은 업무를 하는 경비원 등의 노동자를 말한다. 고용노동부는 이들의 특수한 근무 형태를 고려해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주52시간의 근로 시간과 휴게, 휴일에 관한 규정을 제외하고 있다. 경비원들이 과다한 근로시간을 요구받더라도 여느 근로자들처럼 부당함을 호소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