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쌀값 폭락, 더 이상 반복돼선 안 된다

입력 2022-08-30 20:30:00 수정 2022-08-30 20:33:59

29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29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 길' 주최로 윤석열 정부 농정 규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들은 쌀값 폭락 및 농업생산비 폭등 대책 마련, 농업예산 확충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이석수 서부지역본부장
이석수 서부지역본부장

전국에서 농민 단체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윤석열 정부 농정 규탄' 집회도 열렸다. 그들은 "정부가 밥상 물가를 탓하며 농산물 가격을 때려잡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쌀값 폭락과 농업 생산비 폭등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으라"고 호소했다. 상경 농민들은 애써 수확한 벼를 도로에 뿌리며 격앙된 농심(農心)을 표출했다.

국내 쌀값은 8월 중순 기준 20㎏ 4만2천5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만5천600원에 비해 23.5% 급락했다. 하락 폭으로는 45년 만에 최대치다. 반면 지난해 말 기준 쌀 재고량은 48만6천 톤(t)으로 전년도 28만t보다 무려 70%가량 늘었다. 올해 햅쌀이 수확되면 가격 추가 하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인플레이션 추세로 모든 물가가 치솟는데, 거의 유일하게 거꾸로 가는 것이 쌀값이다.

경북도 내 농협 RPC(미곡종합처리장)엔 재고미가 쌓여 올해 조곡을 보관할 공간이 없을 지경이다. 구미에선 농민들의 한숨을 덜어 주고자 쌀 소비 촉진 운동을 펴고 있다. 직원들이 많은 공단 기업체들과 대학은 물론이고 자영업자들도 대열에 동참했다.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SK실트론, LG 계열사, 금오공대 등이 나서 20㎏ 쌀 2만5천 포를 구매했다.

이러한 십시일반 마음도 재고 해소엔 턱없이 부족하다. 구미만 하더라도 지난해 수확한 조곡이 창고에 7천t 쌓여 있는데, 이는 20㎏들이 쌀 17만 포 규모다. 구미상의는 햅쌀이 나올 때까지 10만 포 판매를 목표로 쌀 소비 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앞으로의 상황도 쌀값 반전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는 과잉생산으로 재고량이 늘었고, 국민 쌀 소비는 감소해서 생긴 일이라는 입장이다. 공급과잉이 쌀값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보니, 풍년이 재앙이나 다름없다. 시장 기능만으로 맡겨 둘 수 없는 대표적 상품이 농산물이다. 그래서 쌀값 폭락은 정부 책임이고 대책 마련도 정부의 몫이다.

농민 단체들은 통상 및 외교 관계로 이뤄지는 쌀 의무 수입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풍년으로 쌀이 남아도 매년 40만t의 수입 쌀이 국내에 들어오고 있다. 이 중 밥쌀용이 4만t이 넘는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수십만t씩 보내던 북한 식량 지원도 중단됐다. 이러한 사정들을 고려한다면 정부가 주먹구구식 양곡 정책을 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더욱이 쌀 초과 생산량이 3%를 넘거나 쌀값이 전년보다 5% 이상 하락할 경우 시장에서 격리할 수 있도록 한 양곡관리법도 잘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해 이미 시장 격리 요건을 충족했는데도 올해 2월부터 뒷북 조치에 들어가 상황을 막지 못했다. 그나마 격리도 최저가 입찰 제도 방식으로 진행해 쌀값 하락을 부채질했다.

근본적으로 식량자급률 제고 농정으로 바뀌어야 한다. 90% 이상인 쌀 자급률을 낮추고 다른 작물 재배를 늘려 20%에 불과한 전체 곡물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 번 사라지면 복구가 불가능한 논 면적을 줄이지 않고, 벼를 대체할 작물 전환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공용 쌀인 '분질미'가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새로운 쌀 품종인 분질미는 전분 구조가 밀가루와 흡사해 빵이나 국수 같은 가공 제품을 만드는 데 용이하다. 다만 수입 밀가루에 비해 2~3배 높은 가격을 극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식량 주권 차원에서 정부와 식품업계, 농민들이 지혜를 모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