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키우다 보면 제아무리 예쁜 꽃이라 해도 초여름 장미가 피어나기 시작하면 빛을 잃는다. 장미를 꽃의 여왕이라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품종도 수만 가지가 있고, 아름다움과 강인한 생명력, 그윽하고 고혹적인 향기는 어떤 다른 꽃도 따라올 수 없다. 날카로운 가시조차도 장미의 위엄을 높이는 데 일조할 뿐이다. 탐스러운 장미 송이의 빛깔과 향기를 음미하다 보면 다른 꽃들은 여왕을 모시는 그저 그런 무수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래서 예로부터 고귀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장미에 비유해 왔다.
장미의 아름다움이 이토록 특별하기에 장미를 노래하는 시와 음악도 무수히 많다. 아일랜드 민요 '한 떨기 장미'(The Last Rose of Summer)는 전통 민요에 19세기 아일랜드 시인 토마스 무어가 시를 지어 붙였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한 떨기 장미'는 여름철 한 떨기 남은 마지막 장미를 노래한다.
"한 떨기 장미꽃이 홀로 피었네./ 사랑스런 친구들 모두 시들어 사라지고/ 친척도 봉오리도 가까이 없어서/ 얼굴 붉힌 모습을 보여줄 수 없고/ 탄식을 주고받을 수도 없네// 외로운 장미여 나는 떠날 수 없네/ 그대 홀로 슬퍼하도록 두지 않으리/ 사랑스러운 친구들 잠들어 있으니/ 가서 그대도 함께 잠에 들기를/ 이리하여~"
'한 떨기 장미'는 꾸밈음과 변화가 많은 느린 선율로 장미의 지극한 아름다움과 한 줄기 바람에 실려오는 향기를 서정적으로 표현한다. 노래를 듣다 보면 장미는 아리따운 젊은 여인이 되기도 하고, 모든 사람들이 지나온 청춘을 의미하기도 한다. 장미의 시절은 금세 사라져 되돌릴 수 없고, 아름다운 사람도 어느새 늙어 무덤에 묻힌다. 노래는 매혹적인 선율을 반복하며 인생사의 희로애락을 압축한다. 젊음과 늙음, 아름다움과 죽음, 자연의 순환과 인생의 허무가 이 짧은 노래에 다 담긴다.
정감이 풍부한 가사는 많은 것을 얻어 풍요롭고 만족스러운 한때가 아니라 때를 놓쳐 더 이상 붙잡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과 소중한 사람들을 불러온다. 굳이 가사를 음미하지 않더라도 이 노래의 선율에는 미처 붙잡지 못하고 놓쳐버린 것, 자각하지도 못한 채 흘러보내버린 것들에 대한 후회나 아쉬움이 짙게 묻어 있다. 그만큼 시가 음악이 되고 음악이 시가 된, 시와 음악이 하나로 잘 버무려진 노래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잎새처럼 마지막 장미라는 말에 마음 한 자락이 아련하게 흔들린다.
노래는 개인의 추억과 공동의 기억을 담는다. 노래는 다른 예술과 달리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장르이기에 다른 예술과 질적으로 다른 경험의 예술이 된다. 알고 보면 인생도 철저하게 시적이고 음악적이다. 아일랜드 민요는 시와 음악으로 내면 깊은 곳에 담긴 이야기를 끌어내며 시대와 지역을 넘어서는 모두의 노래가 되었다.
어느덧 긴 여름이 가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한 떨기 장미'는 세월의 덧없는 흐름에 관한 노래이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마지막 '한 떨기 장미'를 다시 불러본다.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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