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서울의 모든 초등학교 어린이를 한 학기 농어촌에 유학을 보낼 정책을 구상해서 이미 시범 실시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를 극복하기 위한 '생태 감수성'을 함양하고 인구 감소로 폐교 위기에 몰린 농어촌 학교의 폐교 방지를 위해서란다. 그리고 그것을 '준의무' 사항으로 하려 하는데 '준의무'의 정확한 뜻은 '강력 권고'라고 한다. 권고가 얼마나 강력하면 '권고'를 넘어 '강요'가 되는 것일까.
도시의 어린이들이 농어촌에 가서 한 학기 유학을 한다면, 여러 조건이 잘 맞았을 때 많은 이점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만약 조희연의 '준의무' 유학이 전반적으로 시행된다면 대다수의 어린이는 한 학기 내내 생소한 학습 환경과 이질적인 생활환경에 적응하려고 힘겨워하다가 학업 수준 저하와 변화 기피증을 안고 돌아오기가 쉬울 것이다. 이것은 농어촌 어린이가 서울로 유학을 온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학력 저하 방지는 조 교육감의 관심사가 아닌 것 같아 보인다. 사실 조 교육감은 차세대 국민의 학력 저하를 자신의 사명으로 삼고 있는 것 같아 보일 때가 많다. 그는 학부모들의 반대와 여론의 저항이 두렵지 않았다면 정규 교육에서 시험도 없애고 출석 점검도 없애고 모두 학생 '자율'에 맡겼을 것 같다.
수월성 교육을 그토록 싫어해서 외고, 과학고 등의 특목고를 없애서 엘리트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려 하면서 자기 아이들은 둘 다 외고에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 온 국민이 알고 싶어 하는 바인데 아직도 그는 공인으로서 해명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 '농어촌 유학' 정책도 차세대 어린이들의 학습 진로를 한 번 꺾어서 자기 아이들은 토끼로, 다른 아이들은 거북이로 자라기를 바라서라는 혐의를 받는 것이다. 이와 별개로 이 '준의무' 유학은 좌파 교육감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학생 인권'의 심각한 위반이 아닌가.
영문 모르는 학동들을 농촌 학교 존속의 볼모로 삼겠다는 아이디어는 필시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도시 청년들을 농촌으로 보냈던 '하방'(下放)에서 따온 것이리라. 이 하방의 원래 취지는 도·농의 융화였을 것이나 현실적으로는 오히려 위화감이 극대화되는 역효과를 냈다. 옌렌커의 자전적 소설 '아버지와 나'를 보면 주인공은 허구한 날 돌산에서 돌을 져 오는 일을 하다가 자기 마을에 하방되어 와 있는 도시 청년의 거만한 태도를 대하고는 문득 여동생의 고등학교 갈 기회를 박탈해서라도 도시에 가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낀다.
조희연 교육청이 아동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한국판 '하방'을 크게 성공한 실험으로 만들기 위해서 어떤 '거절할 수 없는' 인센티브를, 거부할 경우 어떤 감당하기 어려운 불이익을 부과할 것인가. 죄 없는 우리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실적 경쟁 장기판에서 졸(卒·pawn)의 신세가 된 것이 딱하고 안쓰럽다. 이것이 좌파들이 그리 끔찍하게 여기는 '학생 인권' 존중의 원칙에 합당한 것인가.
지난 정권에서, 여러 좌파 교육감 휘하의 교육청들이 '학생인권조례'를 앞다투어 내놓았는데, 이 조례가 학생들로 하여금 내 주변 모든 사람의 인격을 내 인격과 똑같이 존중해야 함을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인권은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수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심어주는 것 같다. 그 결과 교권이 땅에 떨어지고 학생들의 동료 학생들에, 교사들에 대한 폭언과 폭력 사용이 폭증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 학생인권조례는 성소수자의 권리를 너무나 강조해서 학생들로 하여금 성정체성이란 것과 다양한 성적 기호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끝없이 부추기게 될까 봐 몹시 불안하다. 한편 인권조례에도 불구하고 학생이 학교 측의 부당함에 대해 항의했을 때, 학생은 보호받기는커녕 무지막지한 핍박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3년 전 '인헌고 사태'가 웅변으로 보여주었다. 조 교육감의 회심의 기획으로 보이는 이 '초등학생 농어촌 유학'의 교묘한 인센티브와 불이익 조항 때문에 어린 학생들이 괴로운 귀양살이를 하게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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