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 고집·독선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입력 2022-08-16 17:01:16 수정 2022-08-16 21:01:27

100일 계기 반등 위해 소통, 공정과 상식 정신 되찾아야
국정 안정, 총선 승리, 레임덕 피하려면 이준석 전 대표도 껴안아야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대통령실 용산시대를 열었다. 용산 대통령실 청사 전경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대통령실 용산시대를 열었다. 용산 대통령실 청사 전경

17일로 출범 100일을 맞는 윤석열 정부의 시작은 과감하고 파격적이었다. 우리나라 권력의 상징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대통령실 용산시대를 열었고,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문답)을 시도했다. 5월 10일 취임 후 며칠 되지 않았음에도 한미정상회담(5월 21일)이라는 초대형 이벤트를 받아들여 무난하게 치러냈고, 6·1 지방선거에 이어 국내 대통령으론 처음으로 나토정상회의(6월 29일)에도 참석, 세계 외교 무대에도 얼굴을 알렸다.

그러나 그 효과를 크게 누리진 못했다. 인사 난맥상, 비선 논란, 집권 여당 내홍, 정책 혼선, 막말 논란 등 각종 리스크와 악재가 잇따라 터지면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정국이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상징과도 같았던 도어스테핑도 시간이 지나면서 투박한 태도와 무성의한 답변 등으로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됐다. 급기야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20%대로 추락했다. 지금도 여전히 내각조차 다 꾸리지 못하는 등 윤 정부는 출범 100일이 되도록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취임 100일을 기점으로 초심으로 돌아가고 전열도 재정비해야 되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하루 앞둔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하루 앞둔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00일 윤석열의 트레이드 마크…용산시대와 도어스테핑

'윤석열 대통령'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을 꼽으라면 용산시대 개막과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문답)이 첫손가락을 두고 다툴 거 같다. 그만큼 70여년 권력의 중심이자 상징이었던 청와대를 마다하고 용산에 대통령 집무실을 마련하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고 과감한 결단과 추진력이 아니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출근길 도어스테핑 역시 역대 대통령 누구도 시도조차 못한 파격적인 이벤트로, 역사적인 평가를 받을 만 하다. 도어스테핑도 '구중궁궐'이라 불리던 청와대를 벗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파격 행보가 되레 윤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다. 애초 기대와 달리 출근길 도어스테핑은 대통령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며 안 하느니 못한 애물단지가 됐다. 특유의 투박하고 직설적인, 때론 감정적인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고, 정제되지 못한 메시지도 전달되면서 윤 대통령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기자실을 대통령 집무실 바로 아래층인 1층에 마련해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인 기자들을 너무 가까이 한 것도 취임 초기 득보다 실이 됐다.

도어스테핑, 기자실 지근거리 마련 등 소통을 위한 이러한 파격 행보는 윤 정부 초기 안착에 어려움을 안기긴 했지만 멀리 보면 보약이 될 것이란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예민한 현안에 대해 매일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대답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지금까지 대통령 대면 메시지는 신년 기자회견이나 대국민 담화 등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만 가능했다는 걸 감안하면 획기적이다.

청와대와 달리 대통령실 참모, 직원 업무 공간도 대통령과 같은 건물에 배치된 것도 업무의 신속성, 효율성, 소통 등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만하다. 100일밖에 안 돼 아직은 정착되지 못했지만 이러한 효율과 시간 절약, 소통이 쌓이면 '적립 포인트'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자실도 같은 건물에 있다 보니 대변인, 홍보수석뿐 아니라 핵심 참모들도 브리핑실을 찾아 해당 현안에 대해 설명하는 경우가 적잖다. 이런 공간적 이점을 잘 활용하면 국정 홍보의 든든한 우군으로 만들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수석비서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수석비서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너진 공정과 상식…인사 참사와 여사 리스크 그리고 막말

문제는 이러한 장점들을 무색케 만드는 악재들이다. 인사 검증 실패를 비롯해 검찰 편중 인사, 윤 대통령 지인 등 사적 채용 의혹 등 인사 난맥상은 윤 정부 출범 초기 위기를 초래한 첫손으로 꼽힌다. 여기에 김건희 여사 지인 봉하마을 사적 수행, 대통령실 직원 부인의 나토정상회의 동행, 관저 공사 수의계약 의혹 등 여사 리스크와 비선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윤 대통령의 상징과도 같았던 공정과 상식이 큰 타격을 입었다.

출범 초기 김인철·정호영·김승희 장관 후보자의 낙마와 최근 박순애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자진사퇴 등 내각 인선 실패도 뼈아팠다. 이 여파로 대통령 취임 100일이 되도록 아직 내각 전열조차 갖추지 못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여태 임명조차 되지 못해 80일 이상 비어 있고, 교육부 장관은 우여곡절 끝에 임명됐으나 만 5세 취학 등 취학연령 하향 관련 정책 혼선 문제로 자진사퇴하면서 취임 34일 만에 다시 공석이 됐다.

윤 정부 취임 초기 대통령 본인은 물론 대통령실에서 쏟아진 실언에 가까운 발언들도 윤 정부에겐 치명적이었다.

"퇴근하면서 보니까 벌써 침수가 시작되더라"(집중호우 때 대통령) "비가 온다고 대통령이 퇴근 안 하시나"(집중호우 때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이만큼 훌륭한 장관 봤느냐"(박순애 장관 후보자 관련 대통령), "지지율은 별로 유념치 않았다. 별로 의미 없는 것"(대통령 지지율 하락세 관련) 등이 대표적이다.

집권여당으로 확장하면, 이준석 전 대표를 겨냥한 대통령과 당 원내대표의 '내부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문자 파문을 비롯해 수해로 피해를 입은 현장을 찾은 한 의원이 한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 등의 막말도 있다.

이러한 실언·막말들이 쌓이면서 윤 정부의 오만함과 경박함을 질책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국민들의 분노와 외면을 불렀다. 이는 여지 없이 대통령 지지율과 국정 운영의 위기로 이어졌다.

취임 초 50%대였던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6월 중순 40%대로 떨어졌고, 6월 하순엔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지르는 데드크로스가 나타나더니 급기야 7월 들어 30%대로 내려앉았고 100일도 안 돼 20%대로 추락했다. 대체로 조사기관들의 지지율 추이 결과가 비슷한데, 조사 때마다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은 인사 문제였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3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에 대한 가처분 신청 등과 관련해 직접 입장을 밝히던 중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3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에 대한 가처분 신청 등과 관련해 직접 입장을 밝히던 중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100일은 반등의 기회…인적 쇄신, 공정과 상식 회복 등 초심으로

바닥으로 떨어진 윤 대통령의 지지율 반등과 분위기 전환을 위해선 취임 100일이 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살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100일은 적응과 시행착오의 시간으로 이해할 수 있고, 그렇다고 이미 늦어버린 취임 1년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윤 대통령의 분신과도 같은 공정과 상식, 정의를 다시 바로 세우는 일이다. 이를 위한 첫 걸음은 역시 인사다. 문제를 바로 잡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잃었던 신뢰를 얻고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개편 시점이 다소 빠른 감이 있다 하더라도 100일을 기점으로 한 대통령실 인적쇄신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각종 논란에 대한 미숙한 대응과 대통령 보좌 낙제점 등의 이유로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등 참모진 개편을 통한 새로운 시작을 요구하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에 의리와 스타일은 중요하지 않다.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손을 대고 최대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며 "타이밍을 놓치면 기회를 다시 잡기란 쉽지 않다. 후회할 때는 이미 늦다"고 했다.

이를 위해선 대통령의 인재풀을 좀 더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검찰, 서울대, 지인 등 좁은 인재풀에서 벗어나 안목을 넓혀 경험과 정무감각을 가진 인사를 중용해야 한다는 요구다.

그러나 ' 심각성을 모르는 건지, 알고도 의리와 믿음, 스타일 때문에 안팎의 지적을 외면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윤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실망감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아집과 독선을 벗고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100일 이후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은 16일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취임 100일을 전후로 대통령실 인적구성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어떤 변화라는 것은 국민의 민생을 제대로 챙기고, 국민의 안전을 꼼꼼히 챙기기 위한 변화이어야지 어떤 정치적인 득실을 따져서 할 문제는 아니다"며 "국민을 위한 쇄신으로서 꼼꼼하게 실속있게 내실있게 변화를 줄 생각"이라고 밝혔다.

국정 안정과 총선 승리, 그리고 레임덕을 피하기 위해선 최고 권력인 대통령이 이준석 전 대표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으로 자동 해임된 뒤 독설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이 전 대표와 계속 대치 상황을 이어갈 경우 집권여당 분열과 여권의 자멸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분당을 포함한 여권 분열은 2년 뒤 총선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고, 윤 대통령의 레임덕까지 당길 수 있다"며 "다음 수순은 우여곡절 끝에 잡은 정권을 다음 대선 때 내주는 게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