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병 수필가(북랜드 문장 발행인)
서러움 중의 서러움은?
배고플 때, 돌아갈 집이 없을 때, 당연한 대접을 받지 못했을 때? 기댈 언덕이라도 있다고 믿어질 때, 떼쓰고 몽니 부릴 정도라면 서러움이 아니다. 결핍만 해소되면 서러움은 사라질 수 있다.
눈물 젖은 빵 때문에, 해가 떨어져도 돌아갈 식탁이 없고 고단한 육신조차 누일 집이 없어서, 믿었던 사랑의 배신 등 수많은 설운 일이 있다. 설움은 다른 어떤 서러움과 비교하여 위안 삼을 수 없는 고통이다.
이런 기막힌 상황이 있었다.
내 땅에서 내가 밤잠 설쳐 가며 거둔 것을 두 눈 뻔히 뜨고 빼앗겼다. 혈육을 빼앗기면서도 팔려 가는 송아지 앞의 어미 소처럼 서러운 눈망울로 삭여야 했다. 부모 형제의 단잠을 위해 끌려간다면 한 줌 재로 사라진들 서러울까. 하소할 데 없이 속수무책 받아들여야 했던 서러움이었다. 현명한 독자들은, 나라 없는 서러움이 가장 큰, 해소되기 어렵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불과 80년 전, 2차 세계대전이 극으로 치달을 때 일제는 조선 소녀 150명, 조선 청년 3천16명을 인도네시아 낯선 항구에 마소처럼 내려놓았다. 대동아 공영을 모토로 내건 일본은 동남아 전선에서 연승을 이어 갔다. 소녀들은 입에 담기도 치욕스러운 성 노예로, 청년들은 일본인을 대신한 포로 감시원으로 강제 노역에 투입되었다. 일제의 잔학스러운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 내면서 죽음으로 내몰렸던 청년들은 고려독립청년당을 결성하였다. 죽기를 각오하고 무기를 탈취하는 등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 드디어 악몽의 세계대전은 막을 내렸으나 조선인들은 현지에 내버려졌다. 오갈 데 없는 조선인들은 현지에서 전범으로 내몰렸다. 광복의 날만 꿈꿔 온 그들이 또 나라 없는 설움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인도네시아에 거류하고 있는 이태복 시인이 위안부와 조선인 포로 감시원들의 원혼을 달래려고 5년간 발로 뛰어 취재하고 4년간 35번을 고쳐 쓴 장편소설 '암바라와'가 광복 75주년을 맞아 빛을 보았다.
이에 앞서 지난달 12일 제26회 만해대상 시상식에서는 일본인 우쓰미 아이코(內海愛子·81) 교수가 만해평화대상을 수상했다. 조선인 B·C급 전범의 존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권위자이다. 인도네시아에 낙오된 조선인 징용자들은 일본군 전범자로 몰려 23명이 사형당했다. 일본 A급 전범 중 사형된 사람은 7명이었다. 그녀는 1970년대 인도네시아 유학 당시 조선인 일본 군무원 중 인도네시아에서 항일운동을 한 이들이 있다는 사연에서 출발, '적도에 묻히다'(1980), '조선인 B·C급 전범의 기록'(1982), '스가모 감옥-전범들의 평화운동'(2004) 등의 저서를 남겼다.
이태복 작가는 우쓰미 아이코 교수의 저서에서도 집필 자극을 크게 받았으며 지난달 14일 서울에서 만나 두 분은 인간적인 공감을 나누었다.
어렸을 때 남에게 한두 차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형이나 삼촌이 있으면 서럽지 않았다. 언제든 나를 위해 응징을 해줄 수 있었으니. 나라가 없으면 나를 위한 어떤 보호막도 없다. 그만큼 서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광복절 아침, 거짓말 같았던 악몽을 떠올려 본다. 이국땅에서 혈혈단신 악전고투했던 열사들의 목소리가 쟁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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