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금은 민감한 문제다. 누가 더 내고, 누가 덜 내는지 쉽게 가려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소득 수준에 차이가 나는 계층 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세제 개편안을 두고 논란이 많은 것도 그만큼 폭발력이 큰 주제이기 때문이다.
'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최근 펴낸 책이다. 미국 경제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한 내용이다. 한데 가만히 훑다 보면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그의 생각에다 우리네 현실을 비춰 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하나의 좀비가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부자 감세라는 좀비가.'
좀비는 낯익은 단어다.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영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년 작)이 좀비를 널리 알린 후 대중화의 주요 코드로 자리 잡았다. 우리 영화, 드라마에서도 좀비물이 적잖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은 이른바 '좀비 사극'으로 전 세계를 달구기도 했다.
좀비는 살아 있는 시체다. 잘 죽지 않는다. 다 죽은 줄 알았는데 되살아난다. 그러다 보니 스포츠 분야에서도 이 말이 많이 쓰인다. 종합격투기 UFC 파이터 정찬성의 별명은 '코리안 좀비'. 정규 시즌 내내 허덕대다가도 가을만 되면 힘을 내는 메이저리그 야구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엔 '가을 좀비'란 별명이 붙어 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책에서 '좀비 정책'을 비판한다. 이미 죽은 줄 알았던 경제 정책들이 여전히 비척거리며 사람들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그중 '최강 좀비'로 부자 감세를 꼽는다.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때 감세 정책은 모두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공교롭게도 우리 정부는 최근 법인세 인하, 다주택자 종합부동산세 중과 폐지, 상속세와 증여서 완화 등 감세에 초점을 맞춘 세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줄어드는 세수는 13조1천억 원, 대기업과 고소득층 세수 감소분은 7조7천억 원으로 추산됐다.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정부는 기업의 부담을 줄여 주면 투자가 늘고, 이로 인해 일자리가 증가할 거라고 했다. 이른바 '낙수 효과'다.
크루그먼 교수가 허상이라 꼬집었지만 부자 감세를 통한 낙수 효과의 생명력은 좀비처럼 질기다. 이는 과도한 정치화, 정략적 당파주의 탓에 객관과 과학이 가리키는 증거를 무시하고 합리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분위기 탓이라는 게 크루그먼 교수의 설명이다. 또 그런 현실 뒤엔 부정직한 의도, 나쁜 신념이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비판은 더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2019년 '낙수 효과의 측정과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고소득층 소비를 늘리는 정책이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같은 해 '미국 500대 기업 분석 보고서'에서 감세 조치에도 기업 투자는 충분히 증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 딱 잘라 말하긴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수용할 부분을 찾아보는 게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기본이다. 이 정부에선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세제 개편안만이 아니다. 인사를 둘러싼 잡음은 하나둘이 아니고 최근엔 '만 5세 취학' 문제로 논란이 컸다. 이 정책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도, 없던 일이 돼 버린 것도 참 뜬금없다. 일방통행이 문제다. 그러니 이슈를 또 다른 이슈로 덮기는커녕 논란에 또 다른 논란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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