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무방비 노숙인들 서글픈 여름나기…"옷 입는 것도 힘들어"

입력 2022-08-08 17:03:37 수정 2022-08-08 21:52:47

낮에는 실내에, 밤에는 실외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

올여름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폭염에 노숙인 등 주거 취약 계층에 대한 관심이 절실하다. 26일 오후 동대구역 주변에서 노숙인들이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쪽잠을 자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올여름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폭염에 노숙인 등 주거 취약 계층에 대한 관심이 절실하다. 26일 오후 동대구역 주변에서 노숙인들이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쪽잠을 자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뜨거운 햇볕에 높은 습도까지…. 이번 여름 나기 정말 힘드네요."

연일 이어지는 역대급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숙인들이 힘겨운 여름나기로 신음하고 있다.

8일 오후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이날 대구의 낮 최고 기온은 섭씨 35도를 넘어 폭염경보가 내려진 상황. 공원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노숙인 A(60) 씨가 페트병에 담긴 미지근한 물로 더위를 이겨내려 애쓰고 있었다.

A씨는 "이번 여름은 뜨거운 햇볕에 습도까지 높은 날이 많아 너무 힘들다. 페트병에 담긴 물로 목을 적시거나, 팔 다리에 뿌리는 것이 더위를 피하는 전부"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긴팔 상의와 긴바지를 접어 올려 입고 있었다. 그는 "반팔 셔츠와 반바지를 입으면 뜨거운 햇빛에 피부가 따갑고, 긴팔, 긴바지는 땀 때문에 너무 습하다"면서 "이리저리 궁리한 끝에 옷을 접어서 올려 입고 있다"고 말했다.

8일 오후 3시쯤 찾은 대구 중구 동성로 인근의 야외 벤치. 노숙인의 것으로 보이는 우산, 페트병, 음식물, 신발, 칫솔, 수건 등의 생활용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심헌재 기자
8일 오후 3시쯤 찾은 대구 중구 동성로 인근의 야외 벤치. 노숙인의 것으로 보이는 우산, 페트병, 음식물, 신발, 칫솔, 수건 등의 생활용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심헌재 기자

올해 여름은 일찌감치 시작된 역대급 더위로 기록될 전망이다. 기상청이 발표한 올해 7월 기후 특성에 따르면 7월 상순 전국 평균 기온은 27.1℃, 최고 기온은 32.0℃를 기록했다.

이는 기상청이 관측망을 전국적으로 확충한 지난 1973년 이래 5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뜨거운 땡볕을 피해 건물 내부에서 더위를 피하는 노숙인들도 있었다. 이날 찾은 동대구복합환승센터 대합실 구석에서는 신문과 옷가지를 실은 이동식 손수레 옆에 앉아 더위를 피하는 노숙인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노숙인 B(60) 씨는 "여름 휴가철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아 최대한 구석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다"면서 "낮에는 시원한 건물 안에 있다가 비교적 기온이 낮은 밤이 되면 외부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중구 동성로 야외 의자에는 노숙인의 물건으로 보이는 우산이나 페트병, 음식물, 신발, 칫솔 등의 생활용품이 너저분하게 놓여 있었다. 짐 위에는 소유권을 주장하듯 이름이 크게 적힌 수건도 있었다. 인근 주민 C씨는 "밤이 되면 의자에 쌓여 있는 짐들이 다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노숙인들이 누워있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혹서기 특별대책으로 '노숙인 무더위 쉼터' 18곳을 운영하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5월부터는 혹서기 대책으로 노숙인들에게 도시락 및 얼음 생수를 지원하고 있다"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른 방안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